고장이 불가항력?…결항에도 배상은 “NO”

고장이 불가항력?…결항에도 배상은 “NO”

입력 2010-04-08 00:00
수정 2010-04-08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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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27일 아시아나항공으로 김포-여수를 오가려던 이홍진(35.가명) 씨는 황당한 경험을 했다.

이미 티켓까지 구입한 여수발 김포행 항공기(27일 오후 4시45분 예정)가 정비문제로 취소됐다는 연락을 항공사측으로부터 받았기 때문이다. 출발까지는 일주일도 더 남은 시점이었다.

이씨는 “출발까지 많이 남았는데도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그냥 결항시키다니 이해가 안갔다”면서 “2시간 정도 뒤에 출발하는 다른 항공편으로 바꿔줬지만 저녁 약속에 늦을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항공사측은 예약 홈페이지에서 ‘불가피한 사유로 예고없이 스케줄은 변경될 수 있다’고 안내했다며 배상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관련 법에는 예기치못한 정비는 천재지변처럼 불가항력적인 사유로 분류돼 있어 항공사는 환불이나 대체 항공편을 안내하는 것외에 별도의 배상 책임이 없다.

이씨는 “비행기를 잘 관리해 약속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항공사의 의무 아니냐”면서 “비행기가 고장났는데 그게 왜 불가피한 사유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 고장 결항엔 대부분 배상 없다

한국공항공사와 인천공항공사에 따르면 작년 1월부터 올해 2월까지 14개월 동안 정비를 이유로 결항된 항공편은 국내선 132편, 국제선 9편 등 총 141편이다.

이는 출발 당일 취소된 항공편 수로, 앞서 이씨의 사례처럼 출발을 며칠 앞두고 결항이 결정된 경우까지 포함하면 횟수는 그 보다 몇배로 늘어난다.

이처럼 정비로 인한 결항이 잦은 것은 대부분의 항공사들이 여유기를 두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의 경우 소ㆍ중ㆍ대 각 1대씩 여유기를 두고 있어 상대적으로 정비 결항률이 낮지만 나머지 항공사들은 여유기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비로 인한 결항은 비행기가 고장나 뜨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항공사들은 대부분의 경우에 배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

항공안전 및 보안에 관한 법률 제7장 36조는 ‘승객은 항공운송사업자의 고의·과실로 인한 운송 불이행 또는 지연에 대해 한국소비자원에 피해구제를 청구할 수 있다’고 해놓았다.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따르면 국내선의 경우 3시간 이내에 대체편을 제공하면 운임의 20%, 3시간 이후면 운임의 30%를 배상하도록 돼 있다. 국제선은 대체편 대기시간과 비행시간에 따라 미화 100∼400달러를 배상해야 한다.

정비 문제로 결항됐다면 항공사의 ‘과실’일 가능성이 적지 않지만 이 기준에 따라 소비자가 배상을 받기는 극히 어렵다.

법에 ‘안전운항을 위한 예견하지 못한 정비’가 기상상태, 공항사정, 항공기 접속관계 등과 함께 불가항력적인 사유로 구분돼 있어 배상 책임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소비자원 송선덕 차장은 “정비문제로 인한 출발 지연이나 결항으로 소비자가 피해구제를 신청해도 실제 배상을 받기는 어렵다”면서 “항공사의 과실에 따른 정비문제인지, 예견하지 못한 정비문제인지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항공기 정비는 법에 정해진 바에 따라 철저히 이뤄진다”면서 “그럼에도 예기치 못한 정비 사항이 발생하기 마련이고, 이는 항공사 입장에서는 천재지변처럼 사람의 힘으로 예방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 항의하면 배상..안하면 그걸로 ‘끝’

항공사들은 정비문제로 인한 결항에 대해 ‘공식적으로는’ 배상을 하지 않지만 ‘비공식적으로는’ 하는 경우도 있다. 배상 여부는 항의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

이홍진씨의 경우에도 처음에는 항공사측에서 배상책임이 없었다고 밝혔지만 “항공사를 믿고 예약했는데, 저녁 스케줄이 엉켜버렸다”며 계속 항의하자 면세점 할인권이 제시됐고 이에 응하지 않자 마일리지가제공됐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솔직히 항의하는 고객에게는 소정의 배상을 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놓았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불가피한 정비문제로 비행기가 뜨지 못하는 경우에도 상황에 따라 항공권 할인구매권 등을 제공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는 배상이 아니라 고객서비스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주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한 항공사 관계자는 “설혹 예견하지 못한 정비 문제로 결항됐다 해도 고객에게 불편을 끼친 것은 사실인만큼 소정의 배상을 하자는 논의가 내부적으로 있었지만 누구에게 얼마나 할 지에 대한 기준을 정하는가 쉽지 않아 무산됐다”고 말했다.

국토부 문길주 운항안전과장은 “예기치 못한 정비에 대해서도 항공사측이 배상을 하도록 했다가는 항공사측이 경미한 정비문제는 숨기고 운항을 할 가능성도 있다”면서 “더 큰 문제가 야기될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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