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면 칼럼] 이 시대에 ‘양심’으로 산다는 것

[김종면 칼럼] 이 시대에 ‘양심’으로 산다는 것

입력 2013-10-10 00:00
수정 2013-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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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면 수석논설위원
김종면 수석논설위원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양심의 화신인가. 모두가 선망하는 장관 벼슬을 내려놓게 해달라고 간청을 했다니 색다른 양심의 소유자 같다. 그런데 찜찜하다. 장관 자리를 초개처럼 버린 그 양심의 정체가 수상하다. 그에게 양심은 필경 옳고 그름을 깨달아 바르게 행하려는 의식, 곧 양심(良心)일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겉 다르고 속 다른 두 마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면, 그는 다만 방황하는 양심(兩心)의 주인공에 불과하다.

기초연금을 국민연금과 연계한다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대선공약집만 훑어 봐도 어렵잖게 확인할 수 있다. 대선 당시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을 지내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까지 한 사람이, 그것이 박근혜 대통령의 소신이고 공약임을 몰랐을 리 없다. 박 대통령 아래서 장관 노릇까지 할 것 다 하고 이제 와서 공약이 자기 생각과 다르다고 딴소리를 하는 것은 그야말로 자다가 봉창을 두드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그는 애당초 골치 아픈 복지부 장관이 아니라 ‘인원’을 꽉 쥐고 있는 안전행정부 장관 같은 느긋한 자리를 원했는지 모른다. 어쨌든, 그는 장관 한번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기에 ‘국회의원 장관 겸직 금지‘ 소신도 접고 복지부 수장 자리를 받아들였다. 그렇다면 기초연금 정부안이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게다가 국정감사라는 결전의 장을 코앞에 두고 “양심의 문제” 운운하며 발을 뺄 수는 없는 일이다. 장관쯤 됐으면 양심의 다른 이름이 책임감인 것 정도는 알아야 한다. 대통령과 국정철학도 다른데 괜히 ‘휘핑 보이’(whipping boy)가 돼 남의 죄를 떠맡고 대신 벌을 받을 수는 없다는 심산인지 모르지만 결코 당당해 보이지 않는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이 장관 자리가 아니다. 나아갈 때 나아가고 물러날 때 물러나야 한다. 공직의 엄중함을 한껏 조롱한 가벼운 처신이 공직사회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두렵다.

물의를 빚고 장관을 그만둬도 국회의원으로 또 버젓이 행세하는 세상이다. 엊그제 신문엔 여당 지도부 인사들이 국회에 온 진 전 장관을 ‘개선장군’이라도 되는 양 환한 빛으로 맞는 사진이 실렸다. 험한 말을 퍼붓던 모습은 간데없다. 정치꾼의 본색인가. 도대체 진실이 무엇인지 국민은 헷갈린다. 그러니 정치가 불신받는 것이다. ‘정치인 장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때다.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의 불씨를 반드시 살려내야 한다.

‘진영 사태’는 박 대통령이 인사에 관한 한 정말 솜씨가 없고 불운하기까지 함을 여지없이 보여줬다. 결과적으로 국정철학 공유라는 박근혜 정부 인사 대원칙에 어긋나는 인물을 중용한 꼴이 됐으니 할 말이 없게 됐다. 문제는 다시 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이다. 아무리 소통 부재 현실의 심각성을 지적하고 국정쇄신을 주문해도 대통령의 ‘나홀로 통치’는 바뀔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항명파동을 겪으며 배신의 트라우마까지 더쳤을 테니 더욱더 문을 안으로 걸어 잠글지 모른다. 홀로 가는 길은 위험하다. 그래도 믿을 건 친박 원로들밖에 없다는 듯 전비(前非)도 아랑곳하지 않고 ‘신(新)386’ 연로층을 대거 불러내 호위병풍을 둘렀다. 썩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원칙의 실종이요 상식의 배반이다. 그들이 과연 ‘윗분’을 모시고 파트너십의 지혜를 발휘하며 진정한 소통의 해법을 찾아갈 수 있을까. 경륜 있는 원로그룹도 물론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근육질의 정치력과 신축자재한 사고를 지닌 청장층과의 조화가 없는 원로들만의 행진은 공허하다. 섞여야 힘이 나온다.

창조경제가 시대정신이라면 창조정치 또한 시대정신이다. 명령일하의 리더십은 창조의 적이다. 권위는 지키되 권위주의는 버려야 한다. 정권출범 8개월, 귀가 아프도록 듣고 또 듣는 불통 소리에 우리는 모두 지쳤다. 지금 국민이 대통령에게 바라는 것은 뭐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저 ‘소통하는 양심’이 좀 돼 달라는 것이다. 나만의 원칙보다 중요한 게 만인의 상식이다. 대통령의 서늘한 각성이 필요하다.

jmkim@seoul.co.kr

2013-10-1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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