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수탉머리의 여자’/다발킴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수탉머리의 여자’/다발킴

입력 2017-09-01 17:50
수정 2017-09-01 17:59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다발킴 ‘수탉머리의 여자’
다발킴 ‘수탉머리의 여자’ 39×47㎝, 종이에 컬러펜
뉴욕 프랫인스티튜트 석사 졸업, 2006·2009·2012 국제사막예술프로젝트, 호주노마딕아트레지던시 참가. 아트비트 갤러리 초대전
나는 발자국을 짓밟으며 미래로 간다/심보선

가장 먼저 등 돌리데

가장 그리운 것들

기억을 향해 총을 겨눴지

꼼짝 마라, 잡것들아

살고 싶으면 차라리 죽어라

역겨워, 지겨워, 왜

영원하다는 것들은 다 그 모양이야

십장생 중에 아홉 마릴 잡아 죽였어

남은 한 마리가 뭔지 생각 안 나

옛 애인이던가, 전처던가

그미들 옆에 쪼르르 난 내 발자국이던가

가장 먼저 사라지데

가장 사랑했던 것들

추억을 뒤집으니 그냥 시커멓데

나는 갈수록 추해진다

나쁜 냄새가 난다

발자국을 짓밟으며 나는 미래로 간다

강변 살자, 부르튼 발들아

못 만나면 죽을 것만 같던 연인도 헤어지면 어느덧 시들해지고 역겨워진다. 내 성정이 야멸찬 데가 있기 때문일까. 그리운 것들이 먼저 등 돌리고, 사랑했던 것들이 먼저 누추해진다. 순수한 것일수록 가장 먼저 때를 타고, 고결한 것일수록 가장 먼저 타락한다. 인생이 비루하고 누추해진 것은 그 때문이었어. 삶의 동일성을 지속시키는 기억과 추억의 안쪽을 뒤집어 보면 벌써 시커멓게 썩어 있다. 옛 애인, 전처, 다 역겨워, 지겨워! 아, 나는 개새끼다! 나는 갈수록 추해지고 나쁜 냄새가 난다.

장석주 시인
2017-09-02 22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유튜브 구독료 얼마가 적당하다고 생각하나요?
구글이 유튜브 동영상만 광고 없이 볼 수 있는 ‘프리미엄 라이트'요금제를 이르면 연내 한국에 출시한다. 기존 동영상과 뮤직을 결합한 프리미엄 상품은 1만 4900원이었지만 동영상 단독 라이트 상품은 8500원(안드로이드 기준)과 1만 900원(iOS 기준)에 출시하기로 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적절한 유튜브 구독료는 어느 정도인가요?
1. 5000원 이하
2. 5000원 - 1만원
3. 1만원 - 2만원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