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조어(造語)의 기술/최광숙 논설위원

[씨줄날줄] 조어(造語)의 기술/최광숙 논설위원

입력 2013-10-10 00:00
수정 2013-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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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도이촌’(五都二村)이란 일주일 중 닷새는 도시에서 생활하고, 이틀은 농촌에서 작은 밭을 가꾸며 생활하는 것을 뜻한다. 국립국어원 홈페이지 ‘이런 말도 있어요’라는 코너에서 알게 된 신조어다. 이 코너는 국립국어원이 최근 생겨난 새로운 말에 대한 대중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이곳에는 ‘웃기다’와 ‘슬프다’의 합성어인 ‘웃프다’라는 말도 있다. 재미가 있어 웃기면서도 마음이 아프다라는 의미다.

살아 있는 언어는 시대와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사라지기 마련이다. 요즘 유독 신조어가 대세인 것 같다. 정치권도 예외가 아니다. 새누리당이 경제 활성화를 위한 규제 개혁을 한다며 ‘손톱 밑 가시 제거 특위’를 구성했는데 ‘손가위’로 불린다. 민주당은 약자의 편에 서서 을(乙)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한다며 ‘을지로 위원회’를 만들었다.

이 정도 신조어라면 이해가 되지만 청소년들이 사용하는 신조어들은 아무리 상상력을 발휘해도 좀처럼 뜻을 알기가 쉽지 않다. ‘갠소’(개인 소장), ‘개드립’(순간적인 재치),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다), ‘꿀잼’(매우 재미 있음)의 뜻을 아는 기성세대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젊은 세대에게는 이런 말들이 표준어인지 몰라도 기성세대들에게는 소통의 단절을 가져다 주는 언어 파괴로 느껴질 뿐이다.

어디 신조어뿐인가. 일본어와 같은 외래어가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젊은이들이 ‘멋있다’는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 ‘간지난다’ 같은 일본어가 그 대표적인 예다. 배탈이 났을 때 먹는 ‘정로환’의 유래는 ‘러시아 군대를 정벌하러 간 일본군을 위한 약’이라니 충격적이다. ‘출산’도 일본식 한자다. 우리말은 ‘해산’을 쓰는 게 맞다.

우리 헌법 조문 중 약 30%가 일본식 용어라는 지적이 나왔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정갑윤 의원은 한글날인 어제 법제처의 용어 정비 중 일본식 한자·표현·어투를 기준으로 헌법 조문을 분석한 결과 전체 130개 조문 중 29%인 37개 조문 53곳에서 일본식 용어가 있었다고 밝혔다. 공공기관의 문서에서 많이 사용하는 ‘기타’(그 밖에), ‘당해’(해당) 등은 일본식 용어다. ‘~없는 한’, ‘~한하여’도 일본어투이기에 ‘~없으면’ 등으로 바꿔 써야 한다고 했다.

헌법은 우리의 얼굴인데 많은 부분이 일본식 용어로 쓰여 있다니 부끄러울 따름이다. 개헌 작업이 쉽지 않으니 국민의 동의를 얻어 개헌 절차 없이 일본식 용어만이라도 개정하는 작업이 시급하다. 정쟁이나 일삼는 정치권이 이런 일에 열과 성을 보인다면 박수 받지 않겠나.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2013-10-1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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