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1500만명 지구촌 떠돈다

난민 1500만명 지구촌 떠돈다

입력 2010-06-29 00:00
수정 2010-06-29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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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년 7월, 물류회사에 다니던 26살의 아프가니스탄 청년 사예드 알리 얀은 와닥 지역의 외국계 회사에 석유를 배달하러 길을 떠났다. 카불의 집에서는 임신한 어린 아내 샤이다가 부모가 함께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들에게 찾아든 건 사예드가 아니라 끔찍한 불행이었다. 어디선가 나타난 탈레반 무리가 귀갓길의 사예드를 끌고가 가둬 버린 것이다. 영문도 모른 채 두 달 동안 갇혀있다가 간신히 탈출해 집에 돌아온 그를 맞은 것은 아내의 유산과 아버지의 사망 소식뿐이었다. 탈레반은 탈출한 사예드를 계속 쫓았고, 그는 아프간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집을 팔아 1만 4000달러(약 1700만원)를 마련한 부부는 파키스탄에서 말레이시아로 밀입국했다. 허름한 여관에서 아내는 다시 임신했고, 딸을 낳았다. 최종 목적지인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 향하는 작은 배를 타기 위해 여권과 시계, 휴대전화까지 모두 내놓아야 했다.

미국 시사주간 타임이 27일(현지시간) 전한 전 세계 망명자들의 상황은 참혹했다. 사예드 가족이 머물고 있는 자카르타 외곽의 망명자 수용소는 이미 움직일 틈조차 없을 정도로 꽉 차있다.

종교단체와 유엔의 도움으로 사예드 가족은 방 한 칸을 얻고 딸을 병원에 보낼 수 있었지만, 수중에는 이미 한 푼도 없다.

사예드는 “미리 알았다면 차라리 아프간에 남아서 죽는 길을 택했을 것”이라고 한탄하곤 했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전 세계에서 1500만여명이 넘는 난민들이 발생했고, 이 가운데 82만 6000명이 망명을 위해 떠돌고 있다. 타임은 “이들 중 절반 이상이 아시아인이고, 22%는 아프리카인”이라며 “이들의 정부는 경제적, 정치적으로 국민을 보호할 능력이 부족하고 내전에 시달리고 있다.”고 전했다. 당초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흩어진 유럽인들을 고국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만들어진 UNHCR은 이제 가난과 유혈참사를 피해 도망치는 수백만명을 돌보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탈리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일부 국가는 밀려드는 망명자들로 인해 포화상태를 맞고 있으며 이들 국가 국민 대부분은 더 이상 망명을 받지 않기를 원하고 있다. 타임은 “망명자들이 제3국에서 새로운 인생을 얻는 것은 정말 어려운 꿈이 되고 있다.”면서 “2008년 1050만명의 망명 희망자 중 고작 8만 8000명만이 망명에 성공했다.”고 분석했다. 망명 허가를 받기 위해 5년 이상 기다리는 것은 흔하고, 알제리 등 일부 국가에서는 30년 넘게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실낱같은 희망을 잡는 사람들도 있다.

자카르타의 사예드 가족도 며칠 전 인도네시아 정부에서 망명 허가를 받았다. 인터뷰 약속조차 잡지 못하고 절망하던 이들에게는 뜻밖의 행운이었다. 타임은 “극히 일부만이 이처럼 기쁜 소식을 들을 수 있다.”면서 “한 가족에게는 즐거운 시작이지만,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끝을 알 수 없는 지옥이 계속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2010-06-29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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