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화학상 카플러스 “8세때 나치로부터 탈출”

노벨화학상 카플러스 “8세때 나치로부터 탈출”

입력 2013-10-10 00:00
수정 2013-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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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척도 모델링’으로 10일 올해 노벨화학상을 차지한 미국 학자 세 명 중 한명인 마틴 카플러스(83) 하버드대 교수가 어린 시절 나치 압제에서 벗어나 홀로코스트(대학살)를 극적으로 모면한 경험이 알려졌다.

카플러스 교수가 지난 2006년 ‘생물물리학과 생체분자의 구조에 관한 연간 보고서’에 기고한 장문의 자서전에 따르면, 그는 1930년 오스트리아 빈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8세 때인 1938년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점령하자 조국을 간신히 탈출했다.

카플러스 교수는 이 글에서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점령하기 전부터 자신과 가족을 대하는 주변 사람들의 태도가 어떻게 변했는지, 절친한 친구들이 자신을 따돌리기 시작한 것에 대해 그가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회고했다.

그는 “1937년 그들(친구들)은 갑자기 나와 그 어떤 것도 함께 하려고 하지 않았고, 내가 계속해서 그들과 교류하려고 하자 나를 ‘더러운 유대인 소년’이라고 놀리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나치 독일군이 오스트리아로 밀고 들어온 1938년 3월 카플러스는 어머니, 형제와 함께 스위스로 탈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당시 함께 탈출하지 못하고 빈 교도소에 갇혔다.

카플러스 교수는 “아버지는 일종의 인질로 붙잡혔고 우리 가족의 재산은 한푼도 오스트리아 밖으로 가져갈 수 없었다”고 밝혔다.

어렵게 프랑스의 항구도시 르 아브르에 도착한 일행은 미국으로 건너가기 위해 뉴욕행 여객선을 기다리며 아버지의 소식을 애타게 구했다.

카플러스 교수는 “배가 출발하기 불과 며칠 전 아버지가 정말 기적적으로 르 아브르에 나타나셨다”면서 “나중에 알고보니 삼촌이 아버지의 석방을 위해 5천달러의 보석금을 냈더라”고 말했다.

이처럼 그의 가족은 극적으로 나치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다른 많은 오스트리아 유대인들은 가혹한 운명에 마주쳐야했다.

그는 “역사가 기록한대로 많은 이들이 떠나지 못했고 강제수용소에서 숨졌다”고 말했다.

이론화학의 대가로 분자와 원자 구조에 대한 ‘카플러스 함수’를 개발한 카플러스는 1970년대 하버드대에서 양자물리를 기반으로 한 컴퓨터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인 ‘참’(CHARMM)을 고안, 이 분야 연구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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