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크랙’ 애매모호한 감정선을 허무는 균열

[영화리뷰] ‘크랙’ 애매모호한 감정선을 허무는 균열

입력 2010-07-27 00:00
수정 2010-07-27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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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랙(crack). 바위 표면에 벌어진 틈새. 작은 틈. 균열.

바위 표면에 왜 균열이 생겼을까. 저절로 생기진 않는다. 비 때문이건 지진이 있었건, 외부 충격으로 인해 생긴 건 분명하다. 단서는 안이 아니라 밖에 있다. 영화 ‘크랙’은 이 가정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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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영국의 외딴 기숙학교. 엄격한 교칙으로 둘러싸인 이곳에 모든 여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인 다이빙 교사 미스 G(사진 왼쪽·에바 그린)와 그녀를 추종하는 여섯 명의 소녀들이 있다. 그들만의 견고했던 세계는 스페인 귀족 출신의 아름다운 소녀 피아마(오른쪽·마리아 발레르드)가 전학 오면서 균열이 생긴다. 아름다울 뿐 아니라 다양한 경험과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매력, 뛰어난 다이빙 실력까지 갖춘 피아마의 등장으로 리더였던 디(주노 템플)는 질투를 느낀다. 디는 고군분투하지만 미스 G가 피아마에게 빠져들고 집착하게 되면서 모든 것은 파국을 향해 치닫는다.

폐쇄적인 사회. 그리고 이곳에 진입한 매력적인 이방인. 그 이방인이 그 사회에 동화되지 않는 한 기존의 구성원들은 위기 의식을 느끼기 마련이다. 이방인들에 의해 자신들이 구축해 왔던 환경, 혹은 권력관계가 해체될 수 있다는 공포감은 이들을 보다 보수적이고 공격적인 모습으로 변모시킨다. 영화는 이 과정에서 나타는 균열의 모습을 감각적이고 오묘한 분위기로 연출해 낸다.

크랙의 가장 큰 매력은 수많은 감정선을 무척 애매모호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미스 G의 모습은 섬뜩함과 매력 사이를 넘나든다. 아이들을 휘어잡는 카리스마와 리더십의 이면에 대인공포증과 공황장애를 앓는 역설적인 모습도 있다.

아이들은 피아마를 향해 호감과 질투 사이에서 고민한다. 모든 감정선이 뒤엉켜 버린다. 특별한 사건 없이 잔잔하게 흘러가지만 감정의 경계를 허무는 소용돌이 때문에 104분이란 러닝 타임이 오히려 짧게 느껴진다.

그간 선악 구분에 익숙해져 있는 관객이라면 이런 식의 접근이 다소 복잡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곱씹어보면 이게 더 현실적인 해석이 아닐까 싶다. 사실 동정과 호감, 애정과 증오 등 우리의 감정은 명확하기보단 애매모호할 때가 많다. 누가 자신의 감정을 명확히 말할 수 있을까. 이런 면에서 크랙은 우리의 삶 같은 영화다.

여기에 여성 감독 특유의 매혹적인 영상이 빛을 발한다. 다이빙 장면이나 기숙사의 풍경에서 감독의 섬세한 손길이 느껴진다. 크랙의 조던 스콧 감독은 ‘델마와 루이스’(1991), ‘글래디에이터’(2000)를 만들어 냈던 거장 감독 리들리 스콧의 딸이다. 단순히 거장의 딸이 아니라 훌륭한 영화감독으로서의 발판을 이 영화를 통해 마련했다. 여기에 미스 G로 열연한 에바 그린의 연기 또한 대단했다. 영화 ‘몽상가들’(2005)의 히로인이었던 그의 성장에 경의를 표한다. 연출력과 연기력이 탁월하게 조화된, 최근 보기 드문 걸작이다. 29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2010-07-27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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