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 사위와 한국인 장모의 식품점 운영기

백인 사위와 한국인 장모의 식품점 운영기

입력 2011-07-08 00:00
수정 2011-07-08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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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픽션 에세이 ‘마이 코리안 델리’ 출간

한국 여성과 결혼한 백인 사위는 예술밖에 모르는 문예지 편집자다. 이 사위는 지폐를 제대로 셀 줄도 모르고 매일 쓰는 현금카드 비밀번호도 헷갈린다.

그러다가 집을 장만하려고 생각지도 않은 처가살이를 시작한다. 청교도 집안 출신인 사위는 장모와 함께 식품점(델리)을 운영하면서 새로운 문화와 충돌한다.

신간 ‘마이 코리안 델리’(벤 라이더 하우 지음)는 고상한 백인 사위가 한국인 처가 식구들과 함께 생활하다가 은근과 끈기로 똘똘 뭉친 한국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내용을 담은 논픽션 에세이다.

하우는 문화인류학자의 가정에서 태어나 사립기숙학교에서 교육받은 백인 중산층이다. 시카고 대학에서 한국인 아내를 만났다.

본인은 저명한 문예 주간지인 ‘파리 리뷰’의 중견 편집자로 일한다. 월급은 적지만 유유자적한 삶에 만족한다.

평화로운 삶에 큰 파문이 생긴 것은 처가와 살림을 합하면서부터다. 여기에 억척스런 한국인 장모와 동업까지 하면서 동양 문화와 제대로 뒤섞이게 된다.

”케이(장모)가 짜증을 내지 않으려 노력한다. 이어 어떤 단추를 눌러야 하는지 일러준다. 핵무기를 발사하기 위해 대통령이 취해야 하는 조치보단, 아주 약간 덜 복잡한 과정을 거쳐 마침내 현금통이 탁 튀어나와 열린다. (중략) 케이가 얼굴을 찌푸린다. 이게 면접이었으면, 난 떨어졌다.”(89~90쪽)

장모의 별명은 ‘한국인 타이슨’이다. 무거운 물건도 척척 들고 사위 앞에서 콘돔 상자를 척척 골라 담을 정도로 거침이 없다.

아내도 장모의 피를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장학금에 학자금대출까지 받았고 법학 대학원을 거쳐 변호사가 됐다.

하우는 이런 한국인 여성의 근성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한국 여자들은 다 이런가? 성실한 딸, 아내, 어머니 노릇을 하면서 힘든 일까지 하는 것으론 성이 안 차나? 친척들을 위해 집을 하숙으로 만든 것도 모자라, 꽃꽂이 수강에, 교회 성경 교사에, 한국 음식 요리 비법 숙달까지 동시에 해치워야만 만족하는 건가?”(230~231쪽)

저자가 낯선 문화에 적응하며 ‘백인의 정체성’을 잃어가는 과정은 이처럼 유머 가득한 유쾌한 필체로 소개된다. 장인과 속옷을 나눠 입게 되는 일부터 단골과의 기 싸움, 도매상과의 줄다리기 등 미소를 번지게 하는 일화들이 담겼다.

저자는 한발 더 나아가 처가 식구로 말미암아 자신의 삶을 성찰하게 된다. 타인에 애정어린 시선을 보내는 한국인 가족과 부대끼며 살아가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깊어지게 된다.

이수영 옮김. 434쪽. 1만5천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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