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전 서울발레시어터 예술감독, 콜롬비아 청소년 예술교육 프로젝트
콜롬비아 툴루아에 사는 소녀 나탈리아(16)는 양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해 아기를 낳았다. 가족들과는 더 이상 함께 살 수 없어 교회 보육원에서 지내며 직업훈련을 받는 소녀의 꿈은 소박하다. 제빵사가 돼 시설에 맡겨진 아이를 데려와 키우는 것이다. 할머니 메르세데스(63)는 삯바느질을 하며 혼자 생계를 이어 간다. 할머니의 꿈은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새로운 무언가를 배워 보는 것”이다. ‘희망’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지구 반대편의 소녀와 할머니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지난 10~12일 툴루아의 경찰학교에서 한국에서 날아온 서울발레시어터(SBT) 무용수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였다.제임스 전 서울발레시어터 예술감독
지난 5일부터 18일까지 콜롬비아를 홀리고 돌아온 SBT의 전 감독은 “이들 가운데 한 명의 인생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다면 그건 우리에게도 귀중한 선물”이라고 말했다. SBT는 수도 보고타와 칼리, 팔미라, 툴루아 등 4개 도시를 돌며 공연, 워크숍, 발레 수업 등으로 이어지는 강행군에 나섰다.
지난 6일에는 한국, 중국, 프랑스, 캐나다, 이스라엘, 멕시코 등 6개국 20개 팀이 참가한 제1회 칼리국제댄스비엔날레에 초청받아 창작 발레 ‘사계’를 선보였다. 칼리 호르헤 이삭스 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 1200여명이 기립 박수로 화답했다. 칼리에서 25㎞ 떨어진 팔미라에서는 야외 투우광장 무대에 섰다. 공연 2시간 전부터 자리한 관객 7000여명이 공연이 끝나자마자 무대로 몰려와 무용수들을 붙들고 사진을 찍는 바람에 단원들이 퇴장을 못 하는 소동(?)도 빚어졌다.
지난 10~12일 콜롬비아 툴루아의 경찰학교에서 열린 ‘어린이·청소년 예술교육 프로젝트’(PIP20+)에서 서울발레시어터 단원들이 현지 청소년들에게 발레를 가르치고 있다.
서울발레시어터 제공
서울발레시어터 제공
1995년 창단 이후 90여편 이상의 창작 발레를 내놓으며 산실 역할을 해 온 SBT는 노숙자, 다문화 가정, 장애 아동 발레교육 등 예술의 사회 공헌 활동에도 힘쓰고 있다. 내후년 20주년맞이 준비도 한창이다.
콜롬비아를 감동시킨 전 감독은 내년 국내 관객을 홀릴 준비도 단단히 하고 있다. 새 작품 ‘꽃’에서 전 감독은 13년 만에 주인공으로 무대에 설 예정이다. “저뿐 아니라 40~50대 발레 무용수 10여명이 함께 무대에 오릅니다. 법정 스님께서 사람마다 나이가 들면서 꽃이 된다고 하셨죠. 나이 든 무용수들이 우리가 낼 수 있는 꽃향기를 뿜어내 보자는 의미에서 뭉쳤습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2013-11-28 2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