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절 화가 최욱경의 담대한 실험…흑백 드로잉으로 보니 더 생생하네

요절 화가 최욱경의 담대한 실험…흑백 드로잉으로 보니 더 생생하네

정서린 기자
정서린 기자
입력 2023-08-27 09:18
수정 2023-08-28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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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최욱경 작가가 독자적인 추상 언어를 구축해나가던 때인 초기 미국 유학 시절 그린 다양한 흑백 드로잉과 판화, 크로키가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전시 ‘낯설은 얼굴들처럼’으로 소개된다. 국제갤러리 제공
고 최욱경 작가가 독자적인 추상 언어를 구축해나가던 때인 초기 미국 유학 시절 그린 다양한 흑백 드로잉과 판화, 크로키가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전시 ‘낯설은 얼굴들처럼’으로 소개된다.
국제갤러리 제공
캄캄한 어둠 속 한 존재가 웅크려 있다. 자궁에 움트는 태아 같기도 하다. 흑백의 대비가 생명의 찬연함을 더 강조하는 듯한 그림엔 ‘때가 되면 해가 뜰까. 과연 내게 때가 오긴 할까?’란 글귀가 적혀 있다.

작고한지 38년이 지났지만 작품은 물론 미술계 영향력도 ‘현재진행형’인 한국 추상 대표화가 최욱경(1940~1985). 그의 내밀한 일기, 시적 사유를 들여다보는 듯한 흑백 드로잉과 판화 26점, 크로키 8점이 모였다. 국제갤러리가 10월 22일까지 진행하는 작가의 첫 부산 개인전 ‘낯설은 얼굴들처럼’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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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욱경, 무제(When the Time Comes) 1969 Ink on shiny paper 42.5 x 56㎝ 정서린 기자
최욱경, 무제(When the Time Comes) 1969 Ink on shiny paper 42.5 x 56㎝
정서린 기자
강렬한 색채감각으로 압도하는 그의 추상회화와 달리 ‘흑백으로만 엮은 이야기’들은 서울대 회화과 졸업 후 두 차례의 미국 유학 시절 치열하게 화법을 실험하고 정체성을 고민했던 작가의 중층적 감정과 날 선 감각들을 더 생생하게 드러낸다.

자화상인지 분명치 않은 인물화에서는 무심한 표정의 한 여인이 투명한 시선으로 이 쪽을 응시하고 있다. ‘당신이 무얼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 마음에 안 들기에 도와줄 수 없겠다’라는 솔직한 문구가 자유, 해방감을 느끼며 생각과 감정의 파편들을 드로잉에 쏟았을 작가를 짐작케 한다. 인체를 빠르게 그려낸 크로키들은 역동적인 움직임과 생동감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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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욱경, 무제 1960년대 Pencil on paper, 21x 15.5㎝. 국제갤러리 제공
최욱경, 무제 1960년대 Pencil on paper, 21x 15.5㎝.
국제갤러리 제공
‘나는 미국인인가(AM I AMERICAN)’라고 자문하는 작품에서 보듯, 그는 늘 주류 바깥, 좁은 영토에서 분투하면서도 자신만의 색과 형태를 밀고 나갔다. 1960~1970년대 국전 중심의 구상화나 아방가르드 운동이 활발하던 국내 미술계에선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했다. 미국에서도 당시 미국 미술계 주요 사조인 추상표현주의에 영향을 받으면서도 미국과 한국의 자연, 우리 전통색에 대한 적용 등 왕성한 시도를 통해 고유한 화풍을 일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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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부산 수영구 국제갤러리에서 개막한 최욱경 개인전 ‘낯설은 얼굴들처럼’에서 한 관람객이 인체 드로잉을 살펴보고 있다. 정서린 기자
지난 24일 부산 수영구 국제갤러리에서 개막한 최욱경 개인전 ‘낯설은 얼굴들처럼’에서 한 관람객이 인체 드로잉을 살펴보고 있다.
정서린 기자
전시명은 작가가 1972년 첫 번째 미국 유학을 마치고 잠시 한국에 돌아와 활동할 때 펴낸 시집 제목에서 가져왔다. 그가 “뿌리를 흔드는 경험”이라 했던 유학 시절 쓴 45편의 시와 16점의 삽화로 이뤄진 시집은 현재는 절판됐으나 전시장에서 책과 초판본 복사본으로 살펴볼 수 있다. 삽화 6점은 전시에도 나란히 내걸렸다.

자신에게도 ‘때가 올까, 해가 뜰까’ 회의하고 침잠했던 작가는 짧지만 다채롭고 왕성했던 자신의 예술인생을 미리 내다보듯 이렇게 긍정했다. “그래도 내일은, 다시 솟는 해로 밝을 것입니다. 꽃피울 햇살로 빛날 것입니다.”(시 ‘그래도 내일은’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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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진행 중인 최욱경 개인전에서 볼 수 있는 작가의 시집 ‘낯설은 얼굴들처럼’. 정서린 기자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진행 중인 최욱경 개인전에서 볼 수 있는 작가의 시집 ‘낯설은 얼굴들처럼’.
정서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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