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60>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60>

입력 2013-06-21 00:00
수정 2013-06-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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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주영 그림 최석운

“글쎄올시다…. 별반 본 게 없는데….”

“노인장의 처지는 십분 알고 있으나, 근자에 조금이라도 수상쩍은 낌새가 있었던 떨거지들이 분천을 지나다녔다면 슬쩍 귀띔을 해 주시지요.”

“글쎄…, 내가 이젠 기력도 쇠약한 데다 안질까지 앓고 있어서 거루를 타고 건너다니는 사람들의 면목을 딱히 분별하지도 못한다오.”

“그들이 강을 건너 내성 쪽으로 가는 것을 보았소, 아니면 울진 쪽으로 오는 것을 보았소?”

“글쎄요. 짐 없이 건너다니는 장정들이 어디 한둘이랍디까.”

“노인장에게 욕이 돌아가지 않도록 할 것이오. 혹여 왈패들에게 조리돌림이라도 당할까 두려운 게로군요.”

정한조가 그렇게 말하자 늙은 사공은 드디어 말문을 트기 시작했다.

“그런 패거리들이 며칠 전에는 내성 쪽으로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안질을 앓고 있어 보이는 게 없다면서 붉은 고추만 골라 딴다더니… 잘도 봤구려.”

“요사이는 좀 나아졌지요.”

“노인장과 내가 트고 지내기는 이게 몇 년째요?”

“십오륙 년 가까이 된 것 같으오.”

“노인장이나 나나 불상놈으로 손가락질받으며 곡경을 치르는 처지지만, 우리끼리 서로 두남두고 의리는 상하지 말고 지냅시다.”

분천 강변에서 40년 넘게 거룻배를 저으면서 늙어 가는 처지라면, 강을 건너다니는 인총들 중에서 어떤 자들이 수사리 살이 하는 자이며, 어떤 자가 무뢰배이며, 어떤 자가 행상인지 거울 속 들여다보듯이 훤하게 꿰뚫어 보는 안목을 가지게 될 것이었다. 그래서 길손들의 내왕이 빈번한 강가의 사공들은 산적들의 방조는 물론이고 결탁까지도 서슴없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강 건너 맞은편에는 요사이 들어 보기 드물었던 도포짜리 한 사람이 바라보였다. 그는 새앙머리 처자와 괴춤에 견술 한 병을 차고 수행하는 행랑짜리 하나를 데리고 서서 거룻배가 닿기를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한가한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속내가 다급하고 갈 길이 먼 소금 상단에 비하면 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 같았다. 등짐과 쪽지게를 실은 거룻배는 그제야 사공막 앞을 떠나 강심을 향해 끄덕끄덕 노를 젓기 시작했다. 그때 누구의 입에선가 구성진 사설이 흘러나왔다.

소금 미역 어물 지고 내성장을 언제 가노

가노가노 언제 가노 열두 고개 언제 가노

시그라기 우는 고개 내 고개를 언제 가노

한평생을 넘는 고개 이 고개를 넘는구나

가노가노 언제 가노 열두 고개 언제 가노

시그라기 우는 고개 내 고개를 언제 가노

한양 가는 선비들도 이 고개를 쉬어 넘고

가노가노 언제 가노 열두 고개 언제 가노

시그라기 우는 고개 내 고개를 언제 가노

꼬불꼬불 열두 고개 조물주도 야속하다

가노가노 언제 가노 열두 고개 언제 가노

시그라기 우는 고개 내 고개를 언제 가노…

2013-06-21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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