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주영 그림 최석운
분천 나루를 건너면 곧은재를 넘어야 하고 그 너머에 숫막이 기다리는 검은돌 마을 숫막거리가 나타난다. 일행은 방울나귀를 이끌고 시끌벅적하게 떠들며 숫막거리에 당도하였다. 정한조를 행수로 하는 그들 일행은 유난히 떠들어댔다. 쓸개에 뜨물이 든 사람들처럼 헤헤거리고 웃거나 서로 부아통을 지르며 역증난 소리로 언쟁을 벌이고 하찮은 일에도 천둥소리에 검둥개 날뛰듯 북새통을 벌였다. 그 모두가 주위의 시선을 끌기 위한 계책에서 나온 행동거지였다는 것을 주위에선 알 턱이 없었다. 나귀까지 이끄는 상단이 현동과 내성을 겨냥하고 간다는 소문이 여러 길손들 사이에 짜하게 퍼지기를 정한조는 바라고 있었다.숙객 사이인 윤기호의 어물 도가에 행담을 풀고 서사로부터 임치표(任置票)를 받은 다음 당나귀들도 단골 마방에 맡겼다. 어떤 행중은 거래 사정에 따라, 수결한 어음(於音)이나 환간(煥簡)을 받거나 삭채표(朔債票), 보음지(保音紙)를 받기도 하였다. 거래 문서를 발행한 윤기호가 경상도 내륙은 물론 멀리 강원도와 충청도에서 소금이나 건어물을 사러 온 원매자들과 흥정하여 가절(價折)을 놓게 되면, 구문을 떼고 피륙이나 잡곡 그리고 유기그릇으로 바꿔 소금 상단에 넘긴다. 그러면 척매(斥賣)든 도환(倒換)이든 소금 상단과의 거래는 일단 끝이 난다.
일행은 우선 내성까지 미복잠행 중이었던 길세만의 거처부터 찾아야겠기에 수하 행중을 풀어 매복처를 수소문하도록 하였다. 먼저 약조한 대로라면 잠행시켰던 일행 모두가 내성의 숫막거리 근처에 은신해 있어야 했다. 그러나 밤이 이슥하도록 찾아다녔으나, 그들의 행방은 핫바지에 방귀 새듯 온데간데없었다. 자정이 가깝도록 뜬눈으로 기다리던 정한조는 척후로 띄운 동무들 거처 찾는 것을 단념하고 말았다. 그는 서둘러 수하 동무 둘을 데리고 도방에서 지척인 어물 도가를 찾아갔다. 지게문을 한참이나 흔들고 나서야 곤하게 잠이 들었던 윤기호 내외와 서사가 깨어났다. 홀딱 벗고 누웠던 내외가 부산스럽게 잠자리를 수습하기를 기다렸다. 어섯눈조차 뜨지 못하고 허둥지둥하는 윤기호의 뒷덜미를 잡아채어 일행이 유숙하기로 하였던 도방 뒤쪽의 작둣간으로 데리고 갔다. 한바탕 조리질쳐서 혼쭐을 뺀 다음 작둣간 안으로 잡아 엎치려는 일행을 뒤돌아보며 영문을 모르는 윤기호가 눈발을 날카롭게 흡뜨며 성깔을 부렸다.
“이 무슨 해괴한 거조요?”
2013-06-24 2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