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으로 엿보는 지구의 미래

감정으로 엿보는 지구의 미래

입력 2010-06-05 00:00
수정 2010-06-05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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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지정학】 도미니크 모이시 지음 랜덤하우스 펴냄 펴냄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1596~1650)의 이 말 한마디는 서구 근대인의 사고 방식을 그대로 보여 준다. 인간은 ‘이성’(理性)을 가지고 있기에 생각을 할 수 있고, 또 그렇기에 ‘합리적으로’ 선택한다. 신(神) 앞에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라 믿었던 당시 사람들에게 인간 이성의 위대함을 설파했다는 사실은 서구 역사에 방점을 찍었다. 수학과 물리학, 경제학 같은 학문이 발전한 게 바로 이 합리성에 대한 믿음에서 시작됐던 까닭이다.

국제정치학이라고 다를까. 인간 개개인으로 구성된 국가는 철저히 합리적이고, 철저한 계산을 통해 합리적 의사결정을 내린다는 식의 전제는 아직까지 유효하다. 미국이 중동을 향해 전쟁을 일으킨 것은 ‘석유’ 자원에 대한 상대 우위를 점하기 위해 경제적으로 계산된 행동이라는 주장도 이런 식의 합리적 선택론을 전제한다. 하지만 곱씹어 보자. 과연 우리는 합리적으로만 선택하는 존재일까. 오히려 이성보다 감정에 휘둘릴 때가 많지 않은가.

프랑스 국제문제연구소 연구고문인 도미니크 모이시의 저서 ‘감정의 지정학’(랜덤하우스 펴냄)은 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된다. 국제정치학과 지정학에서도 감정은 여전히 의사결정 과정에 중요한 메커니즘이다. 다만 이성에 밀려 그 중요성이 인식되지 않을 뿐. 모이시는 아시아는 눈부신 경제성장으로 ‘희망’의 감정을, 이슬람은 역사적 몰락과 쇠퇴에 대한 두려움으로 ‘굴욕’의 감정을, 서구는 도전하는 아시아와 이슬람의 위협에 ‘공포’의 감정을 느끼는 이른바 ‘감정이 폭발하는 세계’가 돼 버렸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감정은 국가 혹은 지역의 흐름에 상당부분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한다.

저자의 분석 방식은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과 유사하다. 하지만 헌팅턴이 아시아와 이슬람 문명 환경 속 서구 문명의 딜레마를 묘사하며 ‘문명’이라는 합리적 근거를 제시했다면, 저자는 노골적이고 원초적인 ‘감정의 충돌’을 설파한다. 합리성 중심의 전통적인 연구 흐름에 충분히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1만 3000원.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2010-06-05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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