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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운 기자의 맛있는 스토리텔링<26>청어와 과메기

김경운 기자의 맛있는 스토리텔링<26>청어와 과메기

김경운 기자
입력 2016-02-11 15:21
업데이트 2016-02-11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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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어가 돌아왔다. 겨울철 우리 몸에 좋은 영양 덩어리이기 때문에 청어의 귀환이 반갑다. 예부터 동해에 아주 흔했던 청어가 30여년 전 갑자기 사라졌다가 2~3년 전에 다시 등장한 것이다. 청어가 가출한 사이에 과메기 자리는 사촌 격인 꽁치가 대신했다. 그러나 이제는 본래의 청어 과메기를 맛볼 수 있게 됐다. 청어는 단순히 고소한 맛의 등푸른생선만이 아니다. 16세기 유럽의 ‘대항해 시대’에 역사의 한 장면을 바꾼 일도 있다.

 청어는 북해와 태평양 북서부 해역에서 떼를 지어 돌아다니는 회귀성 어종이다. 찬 바다를 좋아하기 때문에 동해에는 겨울에 모습을 보였다가 날씨가 풀리면 추운 북쪽으로 이동한다. 청어는 참 다양하게 변신할 수 있는 식재료다. 갓 잡아 활어회로 먹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뼈째 썰어서 미역, 무, 양파 등과 함께 초고추장에 버무리면 이른바 막회가 된다.

 구이와 찜, 조림, 찌개는 기본이고 전 부침에도 쓰인다. 또 꾸덕꾸덕 말린 과메기 외에도 고춧가루 뿌린 밥을 청어 뱃속에 넣고 삭힌 식해도 별미라고 한다. 비교적 씨알이 굵은 편인 청어알로는 젓갈도 담근다. 특히 아이를 출산한 산모가 멥살과 함께 쑨 청어죽을 먹으면 모든 병이 없어진다는 옛말도 있다. 그야말로 청어의 ‘무한 변신’이다.

 이처럼 청어가 각광받는 이유는 단백질과 아미노산, 비타민, 칼슘, 철분 등이 고루 들어 있기 때문이다. 머리를 좋게 한다는 DHA, EPA가 많고 숙취 해소에 특효 성분인 아스파라긴산도 콩나물처럼 풍부하다. 옛 바이킹족이나 지금의 북유럽에선 삭힌 청어를 통째로 씹으며 해장을 한다. 물론 먹을 땐 코를 막아야 한다. 아울러 겨울 바다에서 무더기로 잡히니 값이 싸고도 건강한 서민 음식이 아닐 수 없다. 청어가 옛 가난한 선비들을 살찌우는 물고기라는 한자어 별칭도 남아 있다.

과메기는 경북 영일만의 찬 바람과 쨍한 햇볕이 밤낮으로 반복되는 환경에서 야들야들하게 말려진다. 겨우내 한데의 덕장에서 단련되는 황태와 달리, 예전엔 부엌문 밖 처마 밑에 거꾸로 매달렸다. 어머니들은 아궁이 땔감으로 주로 솔가지를 썼는데, 매서운 바람에 부엌문은 닫아도 매캐한 연기가 빠져나가도록 부엌의 작은 창을 열어 두었다. 그 창밖에 청어를 걸어 둔 것이다. 그럼 훈훈한 솔가지의 향이 차가운 해풍과 어우러져 과메기에 배면서 진미가 탄생한다. 그쯤 되면 과메기는 궁중에서나 양반들의 입맛까지 돋우는 진상품으로도 손색이 없었을 것이다.

 과메기는 마늘, 실파, 풋고추에 초고추장이나 쌈장을 넣고 생미역이나 김에 싸서 먹는다. 고소하고 쫄깃한 식감이 입 안을 돌아다닌다. 청어 과메기는 꽁치보다 약간 더 비릿하지만 살집이 두툼하고 기름져 감칠맛을 낸다. 반면 꽁치 과메기는 더 부드럽고 촉촉한 맛을 낸다. 건조 기간도 청어의 10여일에 비해 짧은 3~5일이면 된다. 그래서 식성에 따라 꽁치 과메기가 더 낫다는 경우도 적지 않다.

 네덜란드인은 켈트족과 게르만족의 혼혈로, 땅의 3분의2가 바다보다 낮은 곳에 살던 가난한 이들이었다. 거의 유일한 생계 수단이 북해의 청어잡이였다. 차가운 북해에선 청어가 여름철에 잡힌다. 14세기 한 어부가 청어의 내장을 단칼에 제거할 수 있는 도구를 발명해 네덜란드는 주변의 국가를 제치고 청어의 가공 판매로 돈을 짭짤하게 벌었다. 그물만 내리면 잡히는 청어를 소금에 절여 영국 등 유럽은 물론 아프리카에도 수출한 것이다.

이후 포르투갈이 남쪽 아프리카 대륙을 돌아 아시아와의 향신료 무역으로 국부를 축적하자 후발 주자로 나선 스페인은 서쪽 항로에서 신대륙을 발견하는 ‘대박’을 터뜨린다. 애써 무역을 한 게 아니라 신대륙의 금과 은 등을 아예 약탈한 것이다. 그 틈에 네덜란드는 아메리카 대륙을 오가는 최대 부국 스페인을 상대로 식민지를 자처하며 선박을 수리하고 금융업을 했다. 하지만 스페인이 방만한 국가 경영으로 몰락의 조짐을 보이자 영국의 엘리자베스1세를 끌어들여 독립운동을 했다. 당시 영국은 금은보화로 가득한 스페인 범선을 해적처럼 털면서 스페인과는 앙숙이 된 상태였다.

 네덜란드는 스페인과 영국이 물러나자 그동안 익힌 선박 제조와 수리 기술로 실용적인 범선을 만들어 직접 아시아 원정에 나섰다. 이는 동인도회사 설립과 일본의 근대화로도 이어진다. 숨 가쁘게 진행된 근세 유럽사와 오늘날 부유한 네덜란드의 배경에는 바로 청어가 있었다.

 

 <청어> 고려 문신 이색

 한 말 쌀에 청어가 20여 마리

 눈 대접에 삶아 오니 소반 채소 비춘다

 세상에는 준수한 물건이 응당 많은데

 산 같은 흰 물결이 큰 허공을 친다

 

 김경운 전문기자 kkwo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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