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문화마당] 읽기와 말하기/김재원 KBS 아나운서

[문화마당] 읽기와 말하기/김재원 KBS 아나운서

입력 2016-12-14 18:12
업데이트 2016-12-15 00:15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원고가 있는 거죠?” “그걸 어떻게 다 외워요?” “혹시 프롬프터가 있나요?” ‘6시 내 고향’을 보는 사람들에게 받는 질문이다. 여자 진행자와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는 모습을 보면 궁금증이 생기나 보다. 물론 원고는 있다. 구성 작가들이 공들여 섭외하고 취재해서 써 준다. 굳이 드라마처럼 대본이라 하지 않고 원고라고 하는 이유는 대본에 적힌 대사를 그대로 외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원고는 줄거리와 흐름을 알려 준다. 리포터가 이런 대답을 준비하고 있으니 알아서 질문해 달라는 뜻이다. 고향 소식을 보고 나서는 내 생각과 느낌을 자연스럽게 말할 뿐이다. 나는 원고를 읽거나 외우는 것이 아닌 말하기를 한다.

이미지 확대
김재원 KBS 아나운서
김재원 KBS 아나운서
언어 학습은 읽기와 듣기, 쓰기와 말하기가 바탕이다. 읽기와 듣기는 남의 생각과 지식을 받아들이는 방법이고, 쓰기와 말하기는 내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책을 읽고, 수업을 들으면서 배웠지 생각을 말하거나 쓰는 교육은 기회가 많지 않았다. 특히 말하기는 원고를 읽거나 외우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는 웅변이 유행이었다. 부자연스러운 억양으로 원고를 보거나 외우면서 자신의 주장을 전달하는 방법이었다. 말하기 교육의 일환이었다지만 자연스러운 말하기는 아니었다. 소리 내어 읽기는 말하기의 흉내일 뿐이다.

예능 프로그램은 주로 출연자들의 말하기로 진행된다. 대화 속에서 재미를 찾아낸다. 교양 프로그램은 격식 있는 대화다. 품위를 유지하면서 자연스러운 대화를 이어 간다.

예부터 뉴스 앵커는 자신이 쓴 글을 읽어서 전달해 왔다. 취재기자의 원고에 생각을 덧붙여 멘트를 쓰고, 카메라 앞 투명한 판에 자막을 띄우는 프롬프터라는 장치를 통해 기사를 읽어서 전달한다. 중계차 현장에서 보도하는 취재기자도 카메라를 보고 한두 줄 외워서 말한 후에 곧바로 기사를 읽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한다. 보도의 정확성을 고려한다면 당연하다.

최근 연이은 특종으로 인기를 끄는 한 방송사의 뉴스는 말하기와 대화를 중심으로 보도한다. 프롬프터는 있겠지만 기본적인 전달 방식은 말하기다. 앵커 멘트도 문체와 화법이 다르며, 가끔 시청자와 대화하듯 말하기도 하고, 앵커와 취재기자의 대화가 주를 이룬다. 시청자들은 그러한 전달 방식에 자연스럽게 동화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읽기보다는 말하기가 앵커의 진심을 담아내기에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은 앵커와 대화하고 싶어 한다.

그동안 우리는 읽는 대통령도 경험했고, 말하는 대통령도 경험했다. 준비된 원고에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들어가 있는가는 말하기의 자연스러움을 결정한다. 국정조사에 임하는 국회의원들도 질문을 보고 읽는 경우가 있다. 가끔 오독도 잦은 걸 보면 질문의 작성 과정에 의심이 간다. 그들은 원고를 보며 혼낼 뿐이다. 특히 사과는 읽기가 아닌 말하기여야 한다. 최근 우리가 들은 세 번의 사과는 읽기였다. 내용을 떠나서 말한 것이 아니라 읽었기 때문에 진정성은 느껴지지 않았다. 원고를 보지 않고는 말하지 못한다면, 더욱이 자신이 직접 원고를 쓰지 못한다면 자연스러운 말하기는 어렵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듣기와 읽기를 넘어서 말하기와 쓰기를 교육해야 하는 이유다. 특히 당신의 자녀를 지도자로 키우고 싶다면 적어도 사과는 원고가 아닌 상대방의 눈을 보고 말하도록, 사과 후에 상대의 이야기를 듣도록 가르쳐야 한다.
2016-12-15 30면

많이 본 뉴스

  • 4.10 총선
저출생 왜 점점 심해질까?
저출생 문제가 시간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습니다. ‘인구 소멸’이라는 우려까지 나옵니다. 저출생이 심화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자녀 양육 경제적 부담과 지원 부족
취업·고용 불안정 등 소득 불안
집값 등 과도한 주거 비용
출산·육아 등 여성의 경력단절
기타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