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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시각] 이 노인의 삶은 2.6%라도 성장했을까/유영규 금융부 차장

[데스크 시각] 이 노인의 삶은 2.6%라도 성장했을까/유영규 금융부 차장

유영규 기자
유영규 기자
입력 2017-01-02 22:46
업데이트 2017-01-03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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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규 금융부 차장
유영규 금융부 차장
까맣게 잊고 지냈다. 노인의 안부가 궁금해진 건 ‘새해 빈 병 보증금이 2배 이상 오른다’는 뉴스 덕이었다. 쓰레기 더미에서 가끔 나오는 빈 병에 흐뭇한 미소를 짓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현복(84·가명) 할아버지를 처음 만난 건 2015년 12월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 언덕에서다. 사실 눈에 들어온 건 눈 쌓인 비탈길을 위태위태 올라가는 폐품 더미였다. 당시 노인 빈곤 문제를 취재하던 터라 함께 폐지 줍기를 청했고, 이후 인근 노인들과 며칠간 폐지를 주웠다. 르포 취재를 마친 뒤 “꼭 한번 찾아뵐게요”라고 말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인사치레였다. 죄스러운 마음에 음료수 박스를 챙겨 북가좌동 빌라촌으로 향했다.

1년여 만에 뵌 할아버지는 수척해 보였다. 등은 더 굽었고 움직임도 많이 느려졌다. 해가 변해도 변하지 않은 건 하루 15시간 넘게 무거운 끌차를 끌며 폐지를 주워야 하루 6000원이라도 쥐는 가난한 노부부의 일상이었다. 새해 첫날에도 할아버지는 새벽부터 끌차를 잡았다. “허리가 많이 안 좋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았지만 다른 대안도 없다고 했다. 가난한 노부부는 요즘 말로 하면 55만원 세대다. 총 32만원이 지급되는 기초연금은 약과 병원비 등을 빼면 딱 2만원 남는다. 나머지 23만원을 채우는 건 할아버지의 몫이다.

“그래도 새해엔 빈 병 값이 좀 오른다니 다행이에요”라고 말하자 노인이 웃는다. 할머니가 거든다. “기자 양반이 그것도 몰라. 이제 거리에서 빈 병 찾는 건 동전 줍는 것만큼 어려워. 원래 돈 되는 물건은 없는 사람 차지가 아닌 법이야….” 아는 척 건넨 인사말이 너무 부끄러웠다.

새해 들어 소주병은 40원에서 100원으로, 맥주병은 50원에서 130원으로 빈 병 보증금이 올랐다. 정책 당국은 빈 병 회수율을 높이려는 조치라고 말한다. 빈곤 노인들은 된서리를 맞았다. 모아 뒀다 팔면 돈이 된다는 생각 때문인지 당장 서민 주택가 등을 중심으로 빈 병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정책을 만들면서 빈곤 노인에게 미칠 부작용 등은 없는지 고민이나 의견 수렴을 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22년 만에 오르는 빈 병 값에 이미 복마전이 생겼고, 관련 업계는 자기 몫을 챙겼다. 주류업계는 “가격 인상 요인이 있다”며 지난 연말 소주와 맥주 값을 올렸다. 빈 병 받기를 거부하는 과정에서 도·소매업자 역시 지난해 6월 취급수수료를 병당 12원씩 올려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 속엔 하루 종일 병을 줍는 노인들의 몫은 없다.

늘 그랬기에 섭섭해할 일도 아니다. 빈곤 노인들의 생계지수라고 불리는 ‘폐지 가격’만 해도 그렇다. 6년 전만 하더라도 폐지는 ㎏당 200원 정도를 쳐줬지만 이젠 60~70원대로 떨어졌다. 플라스틱류나 페트병, 알루미늄캔 가격도 반 토막이 났다. 가격이 급락한 만큼 폐지 줍는 노인들의 소득이 떨어졌지만 누구 하나 폐지 가격 따위에 관심을 두는 이는 없었다. 그렇게 6년이 흘렀다. 하지만 폐지 가격 폭락의 원인에는 골판지 업체들의 짬짜미가 숨어 있었다.

요즘 온 나라가 저성장 때문에 고민이다. 경제성장률이 2014년 3.3%에서 2015년 2.6%로 둔화된 후 지난해와 올해까지 3년 연속 ‘2%대 저성장의 늪’에 빠지는 형국이다. 문득 궁금증도 든다. 경제 성장의 총량이 증가하면 국민들의 삶의 질이 향상되느냐는 점이다. ‘경제성장률이 다시 3%대를 넘어선다면 할아버지의 삶은 지금보다 윤택해지는 걸까’라는 의문도 든다. 빈곤층의 겨울은 올해도 뼛속까지 시리다.
2017-01-03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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