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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욕망, 창의성으로 제약을 넘다

공간의 욕망, 창의성으로 제약을 넘다

함혜리 기자
입력 2017-03-05 17:04
업데이트 2017-03-05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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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 귀국전

‘건축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전투에 비유한다면 서울은 가장 치열한 격전이 일어나는 최전선이다.’
지난해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의 한국관을 장식했던 전시 ‘용적률 게임’의 귀국전 설치 장면. 밀도가 높은 도시 서울에서 최대의 바닥 면적을 확보하며 건축주의 요구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는 상황을 사회·문화적으로 해부한 전시다. 오른쪽은 각 건물의 용적률이 표시된 서울 동교동 삼거리 주변 지적도. 용적률은 용도지역에 따라 법으로 정하고 있다.
지난해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의 한국관을 장식했던 전시 ‘용적률 게임’의 귀국전 설치 장면. 밀도가 높은 도시 서울에서 최대의 바닥 면적을 확보하며 건축주의 요구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는 상황을 사회·문화적으로 해부한 전시다. 오른쪽은 각 건물의 용적률이 표시된 서울 동교동 삼거리 주변 지적도. 용적률은 용도지역에 따라 법으로 정하고 있다.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은 국토면적의 12%에 불과하지만 그곳에 전체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 산다. 초고밀도의 도시 서울에서 도시건축의 법과 제도를 피하고, 구역별로 지정된 용적률(필지면적에 대한 건물 바닥면적의 비율)을 적용해 건축을 한다는 것은 전쟁이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건축가들은 때로는 야전 사령관처럼, 때로는 외줄을 타는 곡예사처럼 균형을 잡고 서울이라는 독창적인 도시를 만들었다.

지난해 열린 제15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의 한국관에서는 지난 50년 동안 한국사회에 자리잡고 있는 공간을 향한 집단적 욕망을 ‘용적률 게임’으로 해부했다. 아울러 용적률이라는 제약에 굴복하기보다 오히려 창의성을 촉발시키는 동인으로 역이용할 수 있음을 실제 건축물들을 통해 보여 줬다. 건축전의 전체 주제 ‘전선에서 알리다’에 대응해 멀리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열렸던 한국관 전시를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으로 옮겨와 귀국전을 열고 있다.

전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커미셔너를 맡고 김성홍 서울시립대 교수가 예술감독을 맡았으며 신은기(인천대 교수), 안기현(한양대 교수), 김승범(브이더블유랩 대표), 정이삭(동양대 교수), 정다은(코어건축 실장)이 공동큐레이터를 맡아 기획에 참여했다.

김 예술감독은 “‘용적률 게임’은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 줌과 동시에 ‘한국형 소블록 도시재생’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기하고 그 실마리를 제공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전시의 부제를 ‘창의성을 촉발하는 제약’이라고 정한 것도 이런 배경이다.

전시팀이 연구 대상으로 삼은 주택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서울 곳곳에 들어선 다세대 , 다가구, 상가주택들이다. 한국은 아파트 공화국이라고 하지만 서울에는 여전히 고층 아파트보다는 다가구·다세대 주택에 사는 가구가 더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울시 전체 가구 수의 44.8%가 고층아파트에 사는 반면 55.2%는 다가구·다세대 주택을 비롯한 다양한 유형의 주거건물에 살고 있다.

김 감독은 “개발시대에는 건축가들이 큰 덩어리의 건물을 짓는 데만 참여했는데 금융위기 이후 생각지도 않았던 뒷골목 땅들도 유의미한 건축의 대상이 됐다”면서 “건축가들이 건축주의 요구를 수용하는 동시에 정부의 법과 규제를 준수하면서 미학적 아름다움도 구현하고자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를 보여 주려 했다”고 말했다.

1층 전시실은 베니스전의 전시물을 옮겨와 공간적 특성에 맞게 재배치했다. 도입부에서는 게임의 규칙을 다룬다. 용적률 게임의 정의, 선수, 규칙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용적률 게임에는 소비자인 건축주, 공급자인 건축가와 건축사, 법과 제도로 통제하는 정부가 참여한다. 한국의 도시에서 용적률 게임이 일어나고 있는 이유를 설명하고 사회, 경제, 문화적 가치도 다룬다. 건축가들은 어떤 맥락에서 디자인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지를 보여 주기 위해 다가구, 다세대, 상가주택 등 보편적인 유형의 주택들과 나란히 36개 건축물의 사진과 모형을 설치했다. 최대 용적률을 확보하면서 좀더 넓고 쾌적한 공간을 만들려는 젊은 건축가들의 창의적인 시도를 엿보게 하는 건물들이다.

전시장에는 건축물의 모형, 다이어그램, 수치, 사진, 항공사진이 벽과 바닥을 가득 채우고 있다. 한국관 전시물을 옮겨오면서 한글로 된 설명 없이 영어로 가득한 전시물들은 일반 관람자를 배려하지 않고 있다. 우리 도시와 거리의 풍경을 시각예술가의 눈으로 포착한 회화, 영상물도 설치돼 있어 전시를 더욱 산만하게 한다. 서울의 모습처럼 어지럽다.

귀국전을 위해 2층 전시장에는 36명 건축가들의 작품세계를 보여 주는 영상섹션을 새롭게 만들었다. 건물들이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지어졌는지, 어떤 재료를 사용했는지, 무엇을 강조했는지 등을 영상 작업으로 풀었다.

전시는 5월 7일까지. 전시 기간 동안 2회의 라운드테이블 토크와 정림건축문화재단과 공동 기획한 4회의 공개 포럼 ‘숨은 공간, 새로운 거주’가 매주 토요일 진행된다. 전시는 무료이며 매주 월요일은 휴무이다. (02)760-4604.

글 사진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2017-03-0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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