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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은 인권문제…피해자보호 위주로 대책 세워야”

“가정폭력은 인권문제…피해자보호 위주로 대책 세워야”

입력 2017-03-07 17:03
업데이트 2017-03-07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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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폭력 등 정책 사각지대 해소 필요”…젠더폭력 근절 토론회

A씨 남편의 폭력은 2002년 시작됐다. 처음엔 마지못해 사과했다. 하지만 뺨 한 대는 곧 두 대가 됐고 나중엔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욕설을 하며 때렸다. 주식이 떨어졌다는 이유로 배에 주먹질을 하기도 했다. 남편은 한바탕 퍼붓고 나면 술과 고기를 찾고 강제로 성관계를 했다.

10년 넘게 폭력에 시달리던 A씨는 코뼈가 부러질 때까지 구타를 당하고 집을 나와 한국여성의전화가 운영하는 쉼터에 들어갔다. 소송을 거쳐 이혼하는 데 성공했지만 경제적 기반이 없다는 이유로 두 아이 양육권은 전 남편에게 갔다. A씨는 “실제로는 행복과 거리가 먼 가정이었지만 겉보기엔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완벽해 보이는 가정을 내 손으로 깨야 한다는 게 힘들었다”고 했다.

가정폭력 ‘생존자’ 8명의 수기를 모은 책 ‘그 일은 전혀 사소하지 않습니다’(오월의봄)에 나오는 아내 폭행 사례다. 2013년 여성가족부 조사 결과 ‘가정폭력을 신고할 생각이 있다’는 응답자는 55.0%에 불과했다. 신고하지 않겠다는 사람의 57.4%가 ‘가족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해와 배려로 포장되는 화목한 가정에 폭력이 은폐되는 이유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세계 여성의 날을 하루 앞둔 7일 서울 종로구 변호사회관에서 ‘젠더폭력 근절 정책토론회’를 열고 가정폭력과 관련한 정부 정책이 가정보호가 아닌 피해자 인권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주제발표를 통해 “가정폭력은 명백한 인권 문제이자 사회적 범죄지만 정부부처나 관계기관은 가정 내에서 발생하는 ‘집안 일’, ‘개인적 차원의 문제’로 인식한다”며 “가정폭력 피해여성은 인권을 침해당한 ‘인간’보다는 폭력상황 속에서도 가정을 유지하고 보호해야 하는 ‘아내’, ‘어머니’로 치부되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고 대표는 “이런 인식 차이가 1997년 가정폭력방지법 제정 이후에도 20년간 가정폭력이 근절되지 않는 핵심적 이유”라며 “가정을 지키는 것을 우선으로 하는 법과 정책, 가해자 처벌은커녕 피해자 보호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피해자들의 생명은 여전히 위협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책의 방향전환을 위해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규정된 법률의 목적을 현재 ‘가정의 보호 및 유지’에서 ‘가정 구성원의 안전과 인권 보장’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 상담조건부 기소유예제도 폐지 ▲ 가정폭력 범죄자 체포우선제도 도입 ▲ 피해자에 합의·처벌불원 의사를 종용하는 사법절차 개선 ▲ 가정폭력 피해자에 대한 지원 강화 등을 구체적 개선 방안으로 제시했다.

고 대표는 “현재 가정폭력·성폭력 등이 각각의 법률에 따라 별도의 피해자 지원 근거를 두고 있지만 데이트폭력은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며 “젠더폭력에 대한 기본적 정의, 국가의 책무와 지원체계를 담은 여성폭력근절기본법(가칭)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 정미례 성매매문제해결을 위한 전국연대 대표, 허오영숙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대표, 배복주 장애여성공감 대표, 윤정주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소장이 각자 현장에서 필요한 정책과제를 발표했다.

한국여성의전화와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여성·인권단체들은 토론회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차별과 억압에서 자유로울 권리를 열망하는 수많은 시민들과 함께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착취를 종식시키기 위한 국가정책의 행보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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