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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 에세이] 공공기관에 다양성위원회를 의무화 하자/이복실 전 여성가족부 차관

[수요 에세이] 공공기관에 다양성위원회를 의무화 하자/이복실 전 여성가족부 차관

입력 2017-04-18 22:28
업데이트 2017-04-19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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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 여성 언론인인 S씨를 지난달 모임에서 만났다. 그녀는 최근에 모 부처의 위원회에 위원으로 위촉되었다. 생애 첫 정부위원회 참여 활동이다. 그녀가 말한다. “회의에 가 보니 기관에서 하는 일을 이해하게 되었어요. 그 기관의 정책 방향에 대한 조언까지 하니 뿌듯하고 보람이 있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그 기관은 기관장이 강력한 의지를 갖고 여성위원 최소 40%를 지시했을 뿐만 아니라 수시로 점검하고 있다. 그녀는 힘을 주어 말한다. “여성자원이 없다는 것은 핑계예요. 주변에 자격을 갖춘 여성자원들이 얼마든지 많아요.” 그리고 덧붙인다. “변화를 싫어해서 계속 쓰던 인물만 쓰려고 하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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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실 전 여성가족부 차관
이복실 전 여성가족부 차관
정부위원회 여성 참여는 1980년대 후반 여성정책 태동기에 시작된 초기 정책 중 하나이다. 총리 지시 업무로 추진하다가 1996년에야 여성발전기본법이 제정되면서 법적 근거를 갖게 되었다. 정책 시행 초기에는 여성위원들의 중복 참여 문제가 제기된 적도 있었다. 2005년에 위원회 중복 참여를 조사한 적이 있었는데, 2개 이상의 위원회에 중복 참여하고 있는 여성위원이 200명이 넘었고 심지어 한 여성 시민운동가는 11개 위원회에 참여하고 있었다. 어느 광역지자체에서는 일주일에 4일 동안 위원회에 참석하는 여성도 있어서 혹시 위원이 직업이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들렸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은 인재풀도 늘어나고 정책경험도 쌓이면서 자연스레 해결되었다.

2013년에는 여성발전기본법을 개정해 정부위원회 구성 시 특정 성별이 위촉직 위원 수의 10분의6을 초과하지 않도록 명문화했다. 이 법이 통과될 때 여성 참여율은 25.7%였다. 작년 말 기준으로 42개 중앙행정기관 소속 442개 정부위원회 중 여성 참여율은 37.8%이다. 총 2805명의 여성 위원들이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평균 여성 참여율이 40%를 넘은 곳은 18개 기관에 불과했다.

현직에 있을 때 여성위원의 참여가 저조한 부처들과 회의를 한 적이 있다. 다들 ‘그 분야에 여성 전문가가 적어서’를 주요한 이유로 들었다. 이때 해결의 키는 기관의 의지이다. 인재를 폭넓게 발굴하고 새로운 인재를 기용하려는 유연한 사고가 없이는 실행이 쉽지가 않다.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미국 지상파 방송 NBC 앵커인 케티 케이와 클레어 시프먼이 2014년에 출간한 ‘나는 오늘부터 나를 믿기로 했다’에서 사례로 소개한 국제통화기금(IMF)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의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라가르드 총재는 ‘여성들을 높은 자리로 승진시키고 싶었지만 자격을 갖춘 여성을 찾을 수 없다’는 남성들의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그래서 그녀는 명단을 만들어서 지갑 속에 넣고 다니다가 여성 후보를 찾을 수 없다고 말하는 남성을 만나면 그 명단을 꺼낸다고 했다.

반면에 여성 직원이 90%가 넘는 기관도 있었다. 그 기관은 ‘여성을 위해 일하는 기관이니까’라고 여성 90%에 대해 다들 무심코 넘겼다. 그런데 최근에 만난 나의 지인은 말한다. “아무리 여성을 위해 일한다지만 다양성 측면에서는 그 기관도 더 많은 남성을 채용해야 해요.” 조직의 다양성과 기회균등 측면에서는 남녀구별이 없는 것이다. 아마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그 기관장은 당장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남성들이 지원을 안 해서 그래요.” 어디선가 많이 듣던 이야기다.

우연히 미국대학 홈페이지를 찾아볼 일이 있었는데 새롭다고 느낀 점이 있었다. 홈페이지 한 귀퉁이에 다양성에 관한 통계들이 게재되어 있는 것이다. 학생들의 출신지역, 성별, 연령, 인종 등에 관한 통계를 공개하면서 우리 대학은 구성원의 다양성을 추구한다고 당당하게 천명하고 있었다.

우리나라도 다양성을 제고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성별 통계를 비롯해 다양성 확보를 위한 실적과 노력을 홈페이지에 공개할 것을 제안해 본다. 그러려면 먼저 정부와 공공기관, 일정 규모가 넘는 기업에 다양성위원회부터 설치해야 할 것이다. 현재 정부나 기업에 다양성위원회가 있는 곳은 얼마나 될까. 최근 롯데칠성과 한국 오라클의 다양성위원회 주최 양성평등교육에 초청되어 특강을 한 적이 있다. 두 회사 모두 다양성위원회를 설치해 회사의 다양성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다양성은 굳이 여성에게만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다. 남녀 모두 함께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조직의 다양성을 제고하려는 노력은 중요하고 또 필요한 과제이다.
2017-04-19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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