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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주인 없으면 경비원이 무조건 받아야 할까…입법 논란

택배 주인 없으면 경비원이 무조건 받아야 할까…입법 논란

입력 2017-04-20 09:36
업데이트 2017-04-20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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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사업본부 “우편물 반환율 낮추려는 취지”

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 경비실에 근무하는 A씨는 명절만 되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택배가 쉴새 없이 쏟아져 경비실에 발 디딜 틈 없을 정도인데 야속한 입주자들은 몇 번을 인터폰을 눌러 독촉해도 서두르는 내색조차 하지 않는다.

A씨는 “어떨 때는 택배 기사들이 경비실부터 찾아온다”며 “배달이 잘못되거나 내용물이 상하면 괜히 난처한 상황이 될 때도 많다”고 말했다.

택배 대리 수령은 비단 A씨뿐만 아니라 경비원이라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반갑잖은 허드렛일이다.

그런데 경비원의 우체국 택배와 등기 대리 수령을 법으로 정하려는 입법이 추진돼 주택관리 업계가 난색을 보이고 있다.

20일 국토교통부와 미래창조과학부 우정사업본부에 따르면 우정사업본부는 작년 10월 우편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 법안에는 공동주택에 거주하는 수취인에게 우체국 택배나 등기 등 우편물을 직접 배달하지 못할 때 관리사무소나 경비실에 맡길 수 있는 근거가 담겼다.

개정안은 관계부처 협의와 규제심사를 거쳐 법제처 심사까지 올라갔으나 최근 제동이 걸렸다.

뒤늦게 법안 내용을 알게 된 대한주택관리사협회 등이 민원을 제기했고 국토부도 반대 의견을 냈기 때문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관계부처 협의 공람이 돌 때는 몰랐는데 민원을 받고 내용을 다시 확인했다”며 “경비원의 업무에 우체국 택배 등의 수령 의무를 법으로 명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계약에 의해 택배 수령 등을 정식 업무로 했다면 모를까 우편법으로 계약 외 일을 의무화하는 것은 경비원의 권익을 지나치게 침해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금도 현실적으로 거의 모든 경비원이 택배를 대리 수령하고 있다.

하지만 법으로 의무가 생기게 되면 택배 분실이나 파손 등 상황에 대한 책임을 경비원이 져야 한다.

우체국 택배 수령이 의무화되면서 일반 택배도 자연스럽게 경비원이 책임지고 챙겨야 할 업무가 될 수 있다고 업계는 우려한다.

가뜩이나 최근 아파트 경비원에 대한 입주자들의 ‘갑질’ 등 부당한 대우가 사회 이슈로 부각해 지난달에는 경비원에게 업무 외에 부당한 지시를 하거나 명령을 할 수 없도록 한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우정사업본부는 미처 생각지 못한 문제 제기에 당혹스러워하는 표정이다.

우정사업본부는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우편물 반환율이 높아지는 것도 문제지만 일부 고가 아파트의 경우 아예 출입이 불가능한 경우도 많아 법 개정을 추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는 “우체국 택배나 등기 등은 우편물에 쓰인 주소지에만 배달하게 돼 있지만 일부 고가 아파트는 출입 자체가 안 되는 곳도 있어 어려움이 많다”며 “이런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법 개정을 추진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법 시행령에 경비원이 수령을 거절할 수 있는 단서가 달려 있다”며 “경비원에게 수령 의무를 부여하는 내용이라고 할 수도 없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법에 경비원의 택배 수령 의무가 규정된 상황에서 ‘을’의 입장인 경비원이 거절하기 쉽지 않으리라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우정사업본부는 민원이 제기된 만큼 국토부 등과 충분히 협의해 법안 내용을 검토할 방침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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