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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억 기부하다 세금폭탄’ 황필상씨 “과거로 돌아가도 또 기부”

‘180억 기부하다 세금폭탄’ 황필상씨 “과거로 돌아가도 또 기부”

입력 2017-04-20 16:50
업데이트 2017-04-20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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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만에 취소 판결…“대한민국이 미래 저커버그들 앞길 막아서 되겠어요?”

“우리 장학재단은 동량지재(棟梁之材·기둥이 되는 재목)를 키우는 게 목표입니다. 저 같은 사람 수십 명이 나올 수도 있는데 이런 길을 막아서면 되겠냐는 겁니다. 대한민국이 앞으로 나타날 저커버그(페이스북 창업주) 같은 사람들 길을 다 막는구나, 큰일이구나 그런 생각이…”

헐렁한 양복에 운동화를 신은 황필상(70) 전 수원교차로 대표는 20일 대법원 법정 앞에서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7년간 자신을 옭아맨 법정 다툼이 승소로 끝난 직후였다. 황씨는 전 재산을 장학재단에 기부하려다 200억원이 넘는 세금 폭탄을 맞았고 이후 세무당국과 지루한 소송을 벌여왔다. 대법원이 판결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한때 수백억대 자산가이던 그는 살던 아파트까지 압류당했다.

“결과에 순응할 준비가 돼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대학생에게 기여하려 한 것이고, 문제가 있다면 고쳐지겠죠. 저는 바닥에서 올라온 사람이에요. 빈민촌에서도 살아봤고, 대학교수, 사장 다 해봤고…뭐가 불만이겠어요?”

경북 예천 출신인 황씨의 유년기는 가난 그 자체였다. 겨우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서울 청계천 등에서 우유 배달과 막노동으로 끼니를 이어야 했다. 그런 인생에 변환점이 된 것은 군을 제대한 26세 늦깎이로 들어간 대학이었다. 학교 지원을 받아 프랑스에서 국비 장학생으로 공부하며 박사 학위를 땄다. 1984년 한국과학기술원(현 KAIST) 기계공학과 교수로까지 임용됐다.

‘신분 상승’의 꿈을 이룬 황씨는 1991년 생활정보신문 창업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교수직을 그만두고 매진한 끝에 수원교차로는 140명의 직원이 매일 220면을 발행하는 건실한 사업체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변화를 택했다. 아내와 두 딸을 설득해 보유한 수원교차로 주식 90%(10만 8천주)를 모교 아주대에 기증한 것이다. 시가 177억여 원의 거액이었다.

아주대는 황씨의 주식과 아주대 동문회 등의 출연금을 모아 ‘황필상 아주 장학재단’을 설립했다. 2005년 ‘구원장학재단’으로 개명한 재단은 2008년까지 아주대와 서울대, 한국과학기술대 등 19개 대학, 733명의 학생에게 41억여원의 장학금 및 연구비를 지원했다. 하지만 2008년 세무당국이 뒤늦게 황씨의 기부를 문제 삼으며 재단은 좌초 위기를 맞았다. 기업체 오너가 공익재단에 주식을 기부하며 편법 증여를 하는 관행을 막으려는 세법이 엉뚱하게 황씨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당국은 재단에 무려 140여억원을 증여세로 부과했다. 설상가상으로 황씨는 연대납세자로 지정됐다. 엇갈린 판결을 내리고, 대법원이 심리에 5년을 끌며 세액은 기부금액보다 많은 225억 원까지 가산됐다. 기부자였던 그는 ‘조세포탈범’ 취급을 받으며 약 20억원의 개인재산을 강제집행 당했다. 재단 장학금 역시 매년 축소되다 2015년께 끊겼다.

이날 대법원이 증여세 부과처분이 부당하다고 판단하자 전날 백내장 수술을 받고도 법정을 찾은 황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대법원 앞에서 취재진과 만나 “아주대에 주식을 내어주던 그때로 다시 돌아가더라도 기부를 하겠느냐”는 질문을 받고 잠시 망설이다 “그렇다”고 했다.

“솔직한 얘기로 오늘 선고에서 졌다면 ‘하지 말라’(않겠다)고 답하려 그랬어요…하지만 사는 게 별겁니까. 뜻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데 감사하며 여태 잘 살아왔습니다.”

구원장학재단 측은 재단이 세워진 2002년 8월부터 올해 3월까지 모두 284억 여원을 사회에 환원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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