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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줄날줄] 청와대 밖의 ‘어용 지식인’/박건승 논설위원

[씨줄날줄] 청와대 밖의 ‘어용 지식인’/박건승 논설위원

박건승 기자
입력 2017-05-11 23:16
업데이트 2017-05-12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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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유시민은 ‘싸가지 없는 진보’의 대명사였다. 2003년 국회 첫 등원 날 정장 아닌 흰색 면바지에 재킷 차림으로 나타나 본회의장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2005년에는 같은 당(열린우리당) 김영춘 의원으로부터 “옳은 소리를 저토록 싸가지 없이 말하는 재주는 어디서 배웠을까”라는 한탄도 들었다. 2013년 정계 은퇴 이후 한 종편의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로 나서면서 확 바뀌었다. 예전의 ‘싸가지’와 ‘빽바지’가 무색해졌다. 명석한 논리를 갖춘 예의 바르고 품격 있는 평론가로 변신했다. 대선을 앞두고는 “(새 정부에서) 공무원 될 생각이 없다. 진보 어용 지식인이 되려 한다”고 선언했다.
시인이자 평론가인 김정란 교수는 SNS에서 막강 파워를 자랑한다. 예리한 분석과 상대의 폐부를 찌르는 독설이 예사롭지 않다. 타협하지 않는 단호함이 돋보인다. 페이스북 친구가 1만 2000여명이나 된다. 문재인 후보 진영에서 SNS의 최전방 공격수로 맹활약했다. 그는 대선 날 ‘여성 어용 지식인 1호’를 자칭하고 나섰다. 남녀 통틀어 어용 지식인 1호를 유 작가에게 뺏겼으니 ‘여성 1호’라도 해야겠다는 뜻이다. 어용이란 권력자나 권력 기관의 정치적 앞잡이 노릇을 하는 짓이다. 70, 80년대 대학교수들에게 가장 큰 수치는 ‘어용’이란 딱지가 붙는 일이었다. 그것은 학자적 양심을 내팽개치고 출세를 좇는 등아(燈蛾)의 상징이었다.

그런데도 유 작가나 김 교수는 왜 어용 지식인이 되겠다고 선언했을까. 유 작가의 변은 이렇다. “참여정부 때 편들어 주는 사람이 없어서 힘이 들었던 게 아니고, 객관적으로 (평가)해 주는 지식인이 너무 없어서 힘들었던 거다.” 어용 지식인이 되겠다는 게 무조건 편들겠다는 얘기가 아니라, 사실에 의거해 제대로 비판하고 또 제대로 옹호하는 사람이 한 명쯤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새 정권에 발 들이는 대신 한 발치 떨어져서 비판과 지원을 함께하겠다는 뜻이다. 이후 SNS에 어용 관련 글이 쏟아진다. “이제부터 나는 어용 시민”이라거나 “어용은 정권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이 아닌, 앞으로의 미래를 바르게 건설하기 위한 작업”이란 글도 보인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관가에선 벌써 문 캠프에 몰려든 폴리페서 1000여명의 정치 철새들 때문에 한숨짓는다고 한다. 이런저런 위원회가 우후죽순으로 생기면서 그곳이 아마추어 교수들로 채워질지도 모를 일이다. 임기 중 해마다 200명씩 배치해도 자리가 모자랄 판이다. 대세론에 편승해 한자리 노렸던 지식인이라면 제자리로 돌아가는 게 옳다. 유시민과 김정란이 정답 아닌가.
2017-05-12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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