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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특파원 블로그] “그래도 유일 상승 통로” 중국판 수능 ‘가오카오’ 부활 40주년의 의미

[World 특파원 블로그] “그래도 유일 상승 통로” 중국판 수능 ‘가오카오’ 부활 40주년의 의미

이창구 기자
이창구 기자
입력 2017-06-06 22:28
업데이트 2017-06-06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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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8월 2일 덩샤오핑이 인민대회당에서 과학교과 좌담회를 열었다. 우한대학의 젊은 화학교수 자오취안싱이 입을 열었다. “지금의 대학입학 제도는 인재를 매장시키고 있습니다. 아버지를 잘 만난 이들이 뒷문으로 대학에 진학한다는 사실을 초등학교 애들도 다 알고 있습니다” 문화대혁명으로 폐지된 가오카오(高考·중국식 수능)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문혁의 광풍이 불었던 1966년부터 1976년까지 중국의 대입은 추천제였다. 가오카오는 반혁명 지식분자의 전유물이라는 이유로 폐지됐다. 대신 농민·노동자·군인·홍위병 조직에서 추천한 학생들이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은 ‘공농병(工農兵)학원’으로 불렸다. 이런 조직과 친분이 있는 사람의 자제들이 주로 대학에 들어가다 보니 대학 신입생 중에는 문맹자가 수두룩했다.

좌담회에 참석한 다른 학자와 교육 관료들은 침묵했다. 비록 1년 전 마오쩌둥의 사망으로 문혁이 종결됐지만, 가오카오 부활을 공개적으로 외치는 것은 마오쩌둥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일로 비쳤기 때문이다. 자오의 발언을 메모하던 덩샤오핑은 “다른 동지들은 이견이 있는가”라고 물었다. 아무 대답이 없자 “그럼 올해 당장 가오카오를 부활하자”고 선언했다.

그해 겨울에 부활된 가오카오에는 무려 1160만명이 응시했다. 아직도 깨지지 않는세계 시험 역사상 최고 응시자 기록이다. 10년 동안 시험을 치를 기회가 없었던 10~30대의 수험생들에게 가오카오의 부활은 ‘사상 해방’이었다. 1977년 합격자 중엔 인재가 넘쳐났다. 베이징대 법학과에 합격한 리커창 총리도 그중 한 명이다.

7일부터 9일까지 가오카오가 실시된다. 중국 언론은 가오카오 부활 40주년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덩샤오핑과 가오카오를 부각할수록 마오쩌둥과 문혁의 과오가 떠오르는 부작용이 있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눈치다. 물론 930만 수험생을 한 줄로 세우는 가오카오에 대한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중국은 여전히 가오카오를 신분 상승의 사다리로 여기고 있다.

신경보 7일자 논평에는 중국인들의 가오카오 사랑이 잘 드러난다. “가오카오의 부활은 절망에 신음하던 청년들에겐 희망의 봄이었다. 더이상 추천을 받으려고 굽실거리지 않아도 됐다. 몰래 공부하지 않아도 됐다. 교육 기회의 평등은 신분 상승의 유일한 통로였다. 지식은 여전히 운명을 바꿀 수 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2017-06-07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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