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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웨이 조선] 사뿐사뿐 걸음마다 정적인 한복에 생동감 더해

[런웨이 조선] 사뿐사뿐 걸음마다 정적인 한복에 생동감 더해

입력 2017-06-19 22:38
업데이트 2017-06-20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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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보요의 美

한복은 동(動)보다는 정(靜)에 가까운 옷이다. 느리게 움직이고 우아하게 멈춰 있어야 멋이 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 정적인 아름다움을 동(動)으로 바꾸는 여러 요소가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포진해 있다. 머리 장식에 사용하는 떨잠, 비녀, 화관, 족두리를 비롯해서 고름, 허리끈, 허리띠, 신발 등 어느 것 하나 움직임을 강조하지 않는 것이 없다. 작은 떨림에서 흔들림까지 모두가 몸의 움직임을 따라 반응하도록 설계돼 있다.
나비떨잠은 머리 전면 중앙에 꽂아 특히 선봉잠이라 한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나비떨잠은 머리 전면 중앙에 꽂아 특히 선봉잠이라 한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원형떨잠은 좌우에 꽂아 떨잠이라 한다. 꽃모양으로 조각된 둥근 백옥판에 나비문, 화문 장식을 부착하고 그 위에 은파란을 입혔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원형떨잠은 좌우에 꽂아 떨잠이라 한다. 꽃모양으로 조각된 둥근 백옥판에 나비문, 화문 장식을 부착하고 그 위에 은파란을 입혔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먼저 머리장식부터 보자. 가체 금지령 이후 의례용 수식으로 애용된 화관이나 족두리는 귀금속으로 장식돼 가체와 맞먹는 사치품이 됐다. 그러나 이 수식물이 갖는 미적 특징은 크고 풍성한 가체와는 다른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떨잠은 대례복인 적의나 원삼 등을 입고 큰머리를 할 때 머리에 꽂는 장식품이다. 옥을 조각해 나비 모양이나 원형으로 판을 만들고 그 뒤에는 동으로 만든 납작한 머리꽂이를 붙이고 앞에는 진주, 산호, 비취, 칠보를 상감한다. 또 옥판에 붙여 놓은 용수철 끝에 달아 놓은 칠보로 만든 작은 나비는 머리의 움직임에 따라 크고 작은 떨림을 만들어 낸다. 여기에 광선에 의한 빛의 반사도 시각적인 떨림을 조성해 시선을 집중시키는 조형적 효과를 갖는다. 용수철 위에서 흔들리는 나비는 봄을 알리는 신호인 동시에 부부애, 기쁨, 즐거움을 나타내는 길상(吉祥)의 의미를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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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녀의 머리부분에 여러 가지 장식을 해 꾸민 영락잠(瓔珞蠶)이다. 얇은 금속판으로 된 꽃무늬 장식에 청색 파란을 입혔으며 정수리 부분과 측면의 꽃무늬에는 큰 진주를 감입하고 비녀머리 둘레에는 12개의 진주영락과 6개의 나비 떨새를 장식해 꾸몄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비녀의 머리부분에 여러 가지 장식을 해 꾸민 영락잠(瓔珞蠶)이다. 얇은 금속판으로 된 꽃무늬 장식에 청색 파란을 입혔으며 정수리 부분과 측면의 꽃무늬에는 큰 진주를 감입하고 비녀머리 둘레에는 12개의 진주영락과 6개의 나비 떨새를 장식해 꾸몄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비녀 역시 쪽진 머리가 유행하면서 쪽을 고정시키기 위해 사용했다. 그러나 조선시대 장신구가 모두 그렇듯이 단순히 실용적인 목적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비녀는 재료에 따라서 금, 은, 백동, 놋, 진주, 영락, 비취, 산호, 나무, 뿔, 뼈 등으로 만들고 비녀의 머리장식 무늬에 따라 용, 봉황, 칠보, 원앙, 목련, 석류, 국화, 초롱 등 모양이 다양하다. 특히 백옥초롱영락잠과 같이 장식적 목적이 강조된 비녀에는 여지없이 떨새를 달아 움직임을 강조하고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여기에 화관이나 족두리는 떨림의 효과를 더욱 다채롭게 이용했다. 칠보족두리에는 철사에 꿴 진주, 마노, 산호 장식이 여러 줄에 꿰어져 있다. 용수철에 매달린 나비보다는 움직임이 적지만 구슬과 구슬 사이의 여백에 따라 떨림에 차이가 있다.
박쥐 모양의 2개의 향갑노리개이다. 은으로 된 니사를 정교하게 꼬아 원형의 망을 엮어 향갑을 만들고 매듭은 초록색 끈으로 양생쪽을 맺고 매듭의 끝에는 금사로 가락지를 만들었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박쥐 모양의 2개의 향갑노리개이다. 은으로 된 니사를 정교하게 꼬아 원형의 망을 엮어 향갑을 만들고 매듭은 초록색 끈으로 양생쪽을 맺고 매듭의 끝에는 금사로 가락지를 만들었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그런데 화관이나 족두리에서는 떨림보다 더 강한 흔들림이 있다. 그것은 족두리와 화관의 이마 앞쪽으로 흘러내리는 술 장식이다. 술 장식이 그 어떤 떨새보다 더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여러 가지 구슬을 꿰고 그 끝에 매단 술 장식이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기 때문일 것이다. 머리 장식에서 또 다른 흔들림은 댕기이다. 댕기는 머리카락을 정리하기 위한 목적이 가장 컸지만 댕기의 아름다운 색채와 소재는 머리카락의 흔들림보다 더욱 강렬하다. 머리카락이 한 줌도 되지 않을 서너 살 때부터 배씨댕기를 시작으로 결혼 전까지는 머리를 땋고 그 위에 붉은색 댕기를 드리운다. 결혼을 하면 빨간 댕기를 매어 쪽을 찌는데 나이가 들어도 자식이 있고 부부가 해로하면 계속 빨간 댕기를 맨다. 은근히 자신의 행복을 자랑하고픈 여성의 마음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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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주 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
이민주 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
조선여인들이 가장 사랑한 소품은 단연 노리개다. 노리개는 향갑, 향낭, 침낭, 장도 등 주체에 따라 명칭이 달라진다. 여기에 장식으로 부착된 매듭과 술은 몸의 동작에 따라 율동감을 더한다. 노리개는 향을 넣은 향갑이 특히 인기가 있었다. 향갑 위에는 국화매듭을 하고 향갑 아래에는 오색의 딸기술을 단다. 딸기술 아래로 늘어진 오색술은 단아한 치마의 색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이뿐만이 아니다. 여인들의 필수 아이템으로 빗, 거울과 함께 장도를 꼽는다. 장도는 호신용인 동시에 의장용으로 조선시대에는 여성들의 정절의 상징이기도 했다. 장도를 처음 사용할 때에는 젓가락, 귀이개, 과일꽂이 등을 달아 실용적인 목적으로 사용했지만 점차 패션 소품으로 자리잡았다. 금, 은, 동의 금속재료를 비롯해 흑단, 향나무, 대추나무, 서각, 흑각, 상아 등의 나무와 뿔로 만들었다.

이 외에도 옥, 호박, 공작석, 산호 등 보석류가 이용되었다. 형태에 따라서도 여인들의 버선코같이 생긴 을(乙)자형, 일(一)자형, 사각형, 팔각형이 있으며 장도의 중간에 있는 고리에 매듭을 달고 술을 연결하는 것으로 당시 공예기술의 정수를 담았다. 특히 노리개를 다는 위치는 흔들림의 정도와 깊은 관계가 있다. 저고리에는 노리개를 고름에 끼워 단다. 고름을 한 번 묶고 그 위에 노리개를 끼우면 눌러 주는 효과가 있어서 설사 고름이 풀어진다 해도 바로 옷이 젖혀질 위험은 없다. 치마 위에 내려오는 노리개는 걸음걸이의 속도에 따라 흔들림이 달라지므로 걸음의 속도와 보폭을 조절하는 데 효과적이다.

사뿐사뿐 걸을 때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생동감은 살리고 품위와 우아함은 지키는 보요의 미. 한복의 아름다움을 지키는 신의 한 수가 아닐까.

이민주 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



2017-06-2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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