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천사’ 김군자 할머니 별세
불과 2주 전만 하더라도 정정해 보였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군자(91) 할머니가 23일 돌연 세상을 떠나 충격과 함께 안타까움을 던지고 있다. 이로써 현재 생존해 있는 위안부 할머니는 37명으로 줄었다. 일본 정부가 제대로 된 반성을 하지 않는 가운데 고령의 위안부 할머니 생존자 수는 갈수록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2015년 12월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던 문재인 대통령이 경기 광주시 퇴촌면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쉼터인 나눔의 집을 찾아 김군자(왼쪽) 할머니의 손을 잡으며 활짝 웃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경기 성남시 분당구 분당차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김 할머니 빈소에 조화를 보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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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할머니의 별세는 지난 4월 이순덕(99) 할머니가 운명한 지 석 달여 만이며 올 들어 벌써 세 번째다. 지난해는 7명, 2015년에는 9명이 운명했다. 1995년부터 매년 5~15명씩 별세하고 있다. 남은 37명 생존자들의 평균 연령은 91세다. 나이가 가장 적은 할머니가 85세이며 96세 이상 초고령자도 2명이다. 85~89세가 19명, 90~95세가 16명이다.
김 할머니는 강원 평창군에서 3녀 중 장녀로 태어나 10대에 부모를 여의고 17세에 중국 지린성 훈춘 위안소로 끌려갔다. 몇 번의 탈출 시도는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고 그때마다 구타를 당하는 바람에 왼쪽 고막이 터져 할머니는 평생 왼쪽 귀가 들리지 않았다. 3년간의 위안부 생활 동안 7차례나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김 할머니는 2007년 당시 마이크 혼다 미국 연방하원의원이 주최한 미 의회 일본군 위안부 청문회에서 “해방 후 38일을 걸어 조국에 돌아왔다”며 “위안소에서 하루 40여명을 상대했고 죽지 않을 만큼 맞았다”고 증언해 좌중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그렇게 죽을 고비 끝에 고향에 돌아와 위안부로 끌려가기 전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와 재회했지만 남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그때부터 1998년 나눔의 집으로 오기까지 김 할머니는 혼자 살았다.
일본 정부로부터 공식 사과와 정당한 배상을 받는 것이 소원이었던 할머니는 매주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집회’에 나가는 등 국내외에 위안부 실상을 알리는 데 앞장섰다. 김 할머니는 “떠올리기 싫은 과거를 털어놓고 나면 가슴이 뛰고 악몽으로 잠을 설치지만 살아 있는 한 그리할 것”이라고 말해 여전히 반성하지 않는 ‘일본 제국주의’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김 할머니는 ‘기부천사’였다. 정부에서 받은 보상금 4000여만원 등을 고스란히 모았다가 아름다운재단에 1억원, 퇴촌 성당에 장학금으로 1억 5000만원을 기부했다.
평생의 한을 끝내 풀지 못하고 떠난 김 할머니의 빈소는 경기 성남시 분당구 차병원 지하 1층 특실에 차려졌다. 발인은 25일이며 장지는 나눔의 집 추모공원이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2017-07-24 2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