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문명의 모자이크’ 터키 발굴 현장을 가다] 교회 곳곳에 아로새겨진 ‘신의 계시’… 4세기 기독교 성지

[‘문명의 모자이크’ 터키 발굴 현장을 가다] 교회 곳곳에 아로새겨진 ‘신의 계시’… 4세기 기독교 성지

정서린 기자
정서린 기자
입력 2017-07-31 22:44
업데이트 2017-08-01 00:00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하> 베일 벗은 라오디게아 교회

맑은 노랑, 연분홍, 짙은 와인색 모자이크가 어우러져 세 개의 심장으로 박혔다.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소아시아(아나톨리아) 7대 교회 가운데 드물게 원형이 선명하게 남은 라오디게아 교회 바닥에서다.
이미지 확대
라오디게아 교회 바닥 모자이크화를 복원하고 있는 발굴단의 모습.
라오디게아 교회 바닥 모자이크화를 복원하고 있는 발굴단의 모습.
이달 초 7년간의 발굴·복원 작업을 마친 라오디게아 교회가 최근 일반에 처음 공개됐다.

진주색, 붉은색, 군청색, 하늘색, 검은색, 금색, 은색 등 총천연색으로 연꽃과 튤립, 야자수, 십자가, 기하학무늬를 촘촘히 채운 모자이크가 제빛을 되찾았다. 하나님, 예수, 마리아를 상징하는 세 개의 문으로 통하는 교회는 곡진한 신앙의 표현이던 바닥의 모자이크, 벽면의 프레스코화 등 내부 곳곳의 상징까지 되살아나면서 ‘성지순례의 중심’이었던 과거를 다시 꿈꾸는 듯했다.
이미지 확대
모자이크화 왼쪽에 ‘삼위일체’, ‘마음의 할례’ 등의 의미를 담은 세 개의 심장 무늬가 새겨져 있다.
모자이크화 왼쪽에 ‘삼위일체’, ‘마음의 할례’ 등의 의미를 담은 세 개의 심장 무늬가 새겨져 있다.
지난 19일 한·터키 수교 60주년을 맞아 방문한 한국 문화학술 교류단 ‘아나톨리아 오디세이’ 일행과 만난 젤랄 심셰크 발굴단장(파묵칼레대 교수)은 “육각 테두리 안에 하트 문양 세 개를 이은 모자이크는 기독교의 ‘삼위일체’ 교리와 사도 바울이 강조한 ‘마음의 할례’(마음의 변화를 통해 새 인격으로 거듭남을 가리키는 말)를, 꼬임 장식은 영원한 내세와 천국에 대한 믿음을, 남쪽 통로에 있는 모자이크는 예수와 제자들의 최후의 만찬을 뜻하는 등 모자이크마다 다양한 상징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라오디게아는 기독교 기본 수칙이 정해진 현장으로, 초기 기독교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성지다. 심셰크 단장은 “라오디게아 교회는 다신교 신자가 절반 가까이 되고 에페수스 교회나 아야소피아 등 큰 교회가 없던 4세기에 세워져 초기 교회 가운데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며 “341~381년 라오디게아 교회에서 열렸던 공의회에서 60개 조항의 교회 규정이 확립됐는데 유대교의 토요일이 아닌 예수가 부활한 일요일을 예배일로 정한 것이 한 예”라고 말했다.

교회 북동쪽 코너에 움튼 십자형 우물 형태의 세례당도 초기 기독교의 의식을 엿볼 수 있는 사례 가운데 하나다. 벽돌로 지어 올리고 대리석으로 감싼 1m 깊이의 우물은 4세기부터 큰 물통을 갖추고 교회에서 독립된 공간으로 만들어졌던 초창기 세례당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교회 내부에서 바라보이는 설교단.
교회 내부에서 바라보이는 설교단.
이미지 확대
초기 기독교 세례 의식을 엿볼 수 있는 세례당.
초기 기독교 세례 의식을 엿볼 수 있는 세례당.
교회 앞쪽에 길게 자리한 설교단은 교회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단상으로 여겨진다.

때문에 라오디게아 교회 복원 프로젝트는 지난해 유럽의 문화·자연유산 보호를 위한 민간기구인 유로파 노스트라로부터 “초기 기독교 교회에 대한 치밀한 연구로 문화유산의 보존과 향상에 크게 기여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최근에는 바티칸에서 교회 복원에 큰 관심을 보이며 추기경이 두 차례 다녀가기도 했다. 2013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 리스트에 올랐다.

“교회만 제대로 살펴봐도 두 시간은 걸린다”는 심셰크 단장의 말을 뒤로하고 라오디게아를 관통하는 중심가 시리아 거리에 섰다.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는 라오디게아를 “지상에서 가장 풍요로운 도시”라고 일컬었다. 기원전 3500년부터 정착이 이뤄졌던 라오디게아는 에페수스에서 시리아로 가는 교역 요충지로, 섬유, 곡물, 대리석 무역 등으로 막대한 부를 일궜다.
이미지 확대
라오디게아 유적 가운데를 관통하는 시리아 거리 풍경.
라오디게아 유적 가운데를 관통하는 시리아 거리 풍경.
세련되게 물결치는 기둥이 하늘로 뻗은 신전A, 대로를 중심으로 42m마다 동서로 뻗어 나간 격자형 도시 구조, 전차 자국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은 대리석 바닥, 나일강과 지중해를 건너왔을 이집트 수입 기둥, 시리아 거리 양옆 상점가 터에서 출토된 저울과 화폐 등을 보고 있노라니 전성기에는 최대 7만~8만명이 살았던 대도시, 국제금융의 중심지였다는 말이 실감으로 와닿았다.

넘칠 만큼 부유한 나머지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다고 오만해했던 라오디게아인들은 요한계시록에서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는 꾸짖음을 들었다. 폐허 위에 다시 쌓아 올려진 성소를 찾을 현대인들은 이곳에서 어떤 믿음을 지피게 될까.

글 라오디게아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사진 라오디게아 발굴단 제공·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2017-08-01 21면

많이 본 뉴스

의료공백 해법, 지금 선택은?
심각한 의료공백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의대 증원을 강행하는 정부와 정책 백지화를 요구하는 의료계가 ‘강대강’으로 맞서고 있습니다. 현 시점에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사회적 협의체를 만들어 대화를 시작한다
의대 정원 증원을 유예하고 대화한다
정부가 전공의 처벌 절차부터 중단한다
의료계가 사직을 유예하고 대화에 나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