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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중 수교 25주년] “25년 전 교섭하자는 말에 심장 쿵쾅…사드 극복 위해 軍 채널과 소통 필요“

[단독] [한·중 수교 25주년] “25년 전 교섭하자는 말에 심장 쿵쾅…사드 극복 위해 軍 채널과 소통 필요“

강병철 기자
입력 2017-08-23 23:04
업데이트 2017-08-24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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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수교 주역 김석우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장

1992년 4월 13일. 아시아·태평양 경제사회이사회(ESCAP) 총회 참석차 중국을 방문한 이상옥 외무부 장관은 베이징 댜오위타이에서 첸치천 외교부장을 만났다. ESCAP 총회 전년도 의장국과 그해 의장국 장관 간 자연스러운 협의 자리였다.
한·중 수교 당시 외교부 아주국장이었던 김석우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장이 지난 22일 서울 중구 서울신문사 편집국 인터뷰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호정 전문기자 hojeong@seoul.co.kr
한·중 수교 당시 외교부 아주국장이었던 김석우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장이 지난 22일 서울 중구 서울신문사 편집국 인터뷰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호정 전문기자 hojeong@seoul.co.kr
공식 회담이 끝나자 첸 부장은 느닷없이 예정에 없던 ‘단독 회담’을 하자며 이 장관을 회담장 한쪽으로 이끌고 갔다. 그러고는 꺼낸 말이 “지금부터 본격적인 수교 교섭을 시작하자. 이건 우리 최고지도자(덩샤오핑)와 나 외에 몇 사람밖에 모르는 극비 사항이다”였다.

“그 말을 곁에서 듣자마자 심장이 쿵쾅쿵쾅 하고 뛰었습니다. 이건 역사적인 임무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몇 년이 더 걸릴지 모른다는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25년 전 당시 외교부 아주국장(현 동북아국장)으로 이 장관을 수행했던 김석우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장은 그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김 원장은 “그때는 이미 동유럽 국가, 소련과도 관계를 수립하고 1991년에는 남북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했을 때”라면서 “중국도 이 같은 국제적 흐름을 거역하기는 어렵겠지만 얼마나 빨리 수교 교섭에 응할지는 정부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김 원장은 한·중 외교장관 회담이 끝나자마자 손으로 직접 전문을 썼다고 한다. 비밀 유지를 위해 대사관 전문 시스템을 쓸 수도 없었다. 출국 전 미리 약속해 뒀던 ‘음어’로 작성된 메시지는 인편을 통해 서울에 있던 노창희 당시 외무부 차관에게 전했고 곧장 청와대로 전달됐다.

그리고 며칠 뒤 당시 미얀마 대사 임무를 마치고 귀국해 대기 중이던 권병현 전 주중 대사가 극비리에 교섭 대표로 임명됐다. 또 동북아2과장이던 신정승 전 주중 대사는 ‘위장 병가’를 내고 바로 서울 동빙고동 안가로 출근했다. 작전명 ‘동해’. 한·중 수교 교섭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김 원장은 “마침 그때는 김학순 여사가 처음으로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공개한 직후라 한·일 관계에 국내의 모든 시선이 쏠려 있었다”면서 “낮에는 청사에서 위안부 문제를 챙기고 밤에는 안가에 가서 한·중 수교 교섭을 협의하는 생활을 4개월가량 했지만 가족도 이 사실을 몰랐다”고 회상했다.

김 원장은 25년 전 한·중 수교를 “극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국제적 사건”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수교 이후 양국 관계의 발전 속도는 당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빨랐다”면서 “그 결과 대한민국도 튼튼한 경제 대국이자 아시아의 주요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자리잡았고 중국은 세계 2위의 경제·군사 대국이 됐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수교 당시 생각했던 양국 관계 수준은 이미 수교 10년차쯤에 모두 이룬 것 같다”고 평가했다.

김 원장은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던 양국 관계가 최근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갈등을 겪고 있는 데 대해서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현재 한·중 갈등의 본질은 ‘전략적 환경 변화에서 나오는 구조적 갈등’이라고 진단했다.

김 원장은 “중국이 사드 때문에 우리나라를 계속 압박하고 있는데 과거 중국의 경제력, 군사력이 크지 않았을 때는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았다”면서 “중국은 언젠가 미국에 대해 주도적 지위를 가지겠다는 생각으로 주변국이 중국의 국익을 해하는 일을 막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중국의 당과 정부, 군 중에 특히 군에서 강경 입장을 취하는 사람이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이 문제에 대해 조언하는 것 같다”면서 군 채널의 소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 원장은 향후 10년간 국제사회에서의 중국의 위상이 더욱 높아질 개연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25년 뒤까지 계속 안정적 성장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중국은 지금껏 급격히 성장을 하면서 부정부패, 부의 편중, 내부 소요사태, 고령화 문제 등 각종 문제에 직면했다”면서 “옛날식의 일당 체제로 국가를 운영하는 강압적 거버넌스를 통해서 이 같은 ‘중진국 트랩’을 벗어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중국은 경제력, 군사력 같은 하드 파워와 별개로 인권, 환경, 법치 같은 소프트 파워를 더욱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면서 “중국이 소프트 파워 강화로 주변국의 존경을 받지 못하면 국제질서를 바꾸긴 어렵다”고 분석했다.

한·중 관계의 미래는 어떨까. 김 원장은 “양국 관계가 상당기간 계속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드 갈등 이후 중국 정부가 아무리 한류제한령 등으로 양국 교류를 억제하더라도 이미 터진 교류의 물꼬를 계속 막아 둘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김 원장은 한·중 관계가 한·미 관계를 대체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김 원장은 “중국의 힘이 압도적으로 커진다면 미·중 갈등도 커지고 우리도 그 사이에서 더 힘들어지겠지만 중국이 중진국 트랩을 벗어나지 못하면 시간은 꽤 걸릴 것”이라면서 “힘의 문제를 넘어 우리는 통일이 될 때까지는 미국 주도적 질서를 따라가야 한다. 양자택일은 성급한 얘기”라고 지적했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2017-08-24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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