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여름 폴란드 바르샤바. 얀과 안토니나 자빈스키 부부는 동물원을 운영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폴란드를 뒤덮으며 동물원도 악몽에 빠진다. 독일 나치의 폭격으로 부부가 애지중지하던 동물들이 많이 죽고 다치고 도망간다. 동물원은 독일군에 압류돼 무기고로 사용된다. 망연자실함을 맞닥뜨린 자빈스키 부부는 절친한 유대인 부부가 강제수용소인 게토에 끌려갈 위기에 처하자 그중 부인을 집에 몰래 숨겨 주기로 한다. 이들은 한 발 더 나아가 위기에 처한 유대인을 적극 돕기로 결심하고, 이를 위장하기 위해 군인에게 고기를 공급하는 돼지 농장을 동물원에 열겠다고 독일군에 제안한다. 돼지 사료로 쓸 잔반을 가지러 게토를 오가게 된 얀은 게토에 수용된 유대인들을 몰래 빼돌려 달아나게 하거나 동물원 등에 숨어 지내게 한다. 그렇게 전쟁이 끝날 때까지 목숨을 부지한 유대인은 무려 300여명.
영화 ‘주키퍼스 와이프’
오는 12일 개봉하는 ‘주키퍼스 와이프’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의 공포와 파괴의 시간 동안 폴란드 바르샤바 동물원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기적 같은 실화를 그린 작품이다. 영화는 자빈스키 부부를 영웅으로 과대 포장하지 않는다. 동물을 사랑하고 삶을 사랑한 사람들이 조금씩 용기를 내고 위험을 무릅쓰며 기적을 빚어내는 이야기를 잔잔하게 풀어낸다. 이 과정에서 옳은 일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일들로 쌓인 부부 사이의 오해를 감당해야 하는 것은 안토니나의 몫이다. 이때부터 카메라는 안토니나 쪽으로 기울어진다.

아무래도 안토니나를 연기한 제시카 차스테인에게 시선이 쏠리지 않을 수 없다. 20대 후반 늦깎이로 연기에 입문했지만 ‘제로 다크 서티’ ‘마션’ ‘인터스텔라’ ‘미스 슬로운’ 등을 통해 할리우드 최고 배우로 거듭나고 있는 그녀다. 앞서 차스테인은 강한 여성상을 자주 선보였으나 이번 작품에선 걸크러시라기보다는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기는 외유내강의 연기를 보여 준다.

이 영화는 첫 공개 당시 여성판 쉰들러 리스트, 최초의 페미니스트 홀로코스트 영화라는 찬사를 받았다. 기적 같은 실화가 책으로 만들어져 널리 알려지고, 또 영화로 만들어지기까지 많은 여성의 힘이 컸다는 점이 흥미롭다. 박물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다이앤 애커먼이 안토니나의 일기와 역사적인 사료, 유족과 유대인 생존자의 증언 등을 취재해 논픽션으로 묶은 책은 2007년 베스트셀러가 됐다. 디즈니 ‘뮬란’ 실사판 감독으로 낙점받은 뉴질랜드 출신 니키 카로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것을 비롯해 프로듀서, 미술감독, 카메라 오퍼레이터, 스턴트 등까지 여성들이 대거 참여했다. 정점은 찍은 것은 물론 차스테인이다. 12세 관람가.

홍지민 기자 icarus@soe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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