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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바닥에 관한 성찰/권현형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바닥에 관한 성찰/권현형

입력 2017-11-10 17:54
업데이트 2017-11-13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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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곤/꿈을 싣고 오는 자동차
김명곤/꿈을 싣고 오는 자동차 117㎝×91㎝ 캔버스에 아크릴 채색.
홍익대 회화과 졸업·동대학원 회화과 석사. 대만아트페어·키아프(한국국제아트페어)·아시아호텔아트페어·마이애미아트페어 등에서 개인전.
바닥에 관한 성찰/권현형

저녁이 깊이 헤아려야 할 말씀처럼
두텁게 내려앉는 11월

뱀은 껍질을 발자국처럼 남기고
숲으로 사라진다
얼굴은 들고 허물은 벗어놓고

온몸의 발자국 같은
발자국의 온몸 같은 너의 껍질을
목간(木簡)처럼 받아 들고 나는 깨닫는다

얼굴을 꼿꼿이 들고 낡은 몸을 버리고 숲속으로 사라진
너의 내성이 인류를 구하리라
바닥에 납작 엎드려 너는 자존심을 감추고 살아 있다

관능의 화신으로 악마의 화신으로
돌팔매질 당해온 너의 깊은 슬픔
바닥을 쳐본 너의 고통이 세계를 구원하리라

짐승에서 인간으로, 짐승에서 인간까지

조락과 죽음을 피할 수 없는 11월이다. 한해살이 초본식물은 시들고, 뱀은 동면에 들기 위해 껍질을 두고 사라졌다. 떠나는 것은 왜 늘 “얼굴은 들고 허물은 벗어놓고” 가는가. 시인은 11월에 사라진 뱀을 떠올린다. 허물을 남긴 채 숲속으로 사라진 뱀과 바닥에 납작 엎드려 살아남은 그 누군가를 겹쳐 보며, 바닥을 쳐 본 자의 내성을, 슬픔을, 고통을 곱씹는다. 그게 짐승이든 인간이든 돌팔매질당하면서도 살아남은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바닥을 쳐 본 자의 고통과 내성이 마침내 세계를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장석주 시인
2017-11-11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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