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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강진 르포] 구조대 미처 못 온 산간마을 150명중 17명 숨져

[이란강진 르포] 구조대 미처 못 온 산간마을 150명중 17명 숨져

입력 2017-11-16 07:01
업데이트 2017-11-16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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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도 못 견디는 7.3 강진에 철근없는 벽돌집 ‘우르르’

어린이들 외부인에 ‘구걸’…구호품 두고 인심 사나워져

“산이 입을 열었다.”

12일(현지시간) 밤 강진으로 5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난 이란 북서부 케르만샤 주(州)의 사르폴레자헙 일대 국경지대는 쿠르드족이 사는 곳이다.

15일 오후 만난 쿠르드계 주민들은 이번 지진을 두고 “산이 입을 벌렸다”고 했다.

한국에서 인력으로 막을 수 없는 자연재해나 불길한 사건이 벌어지면 “산신령이 노하셨다”면서 자조하고 자신의 불경과 불찰을 되돌아보는 모습과 비슷했다.

이곳의 지형은 나무가 드문드문 난 험준하고 척박한 바위산과 메마르고 깊은 계곡이다.

지질학적으로는 알프스-히말라야 조산대에 속하는 단층선상에 있다. 활성단층과 습곡의 운동이 활발해 산세가 매우 험하다.

케르만샤 주의 쿠르드족은 태어날 때부터 이런 고산준령을 보고 자랐을 터다.

역사적으로 강대국에 번번이 ‘배신’당했던 쿠르드족은 그래서 “산만이 유일한 친구”라면서 자신을 위로했다.

그랬던 산이 노한 것이다. 이번 지진은 올해 전 세계에서 발생한 지진 가운데 최악의 인명피해를 냈다.

가장 많은 사망자가 난 사르폴레자헙보다 더 진앙에 가까운 마을로 1시간 정도 더 차를 타고 접근했다.

위압적인 바위산 아래 수십 가구 규모의 작은 마을이 듬성듬성 자리 잡았다.

바위를 깎아 구불구불 닦인 1차선 도로마저 지진으로 군데군데 무너져 구조대가 지진 뒤 신속하게 도착하지 못했다.

그중 한 곳인 비즈미르-어바드 마을은 전체가 초상집이었다.

마을 주민 150명 가운데 사망자가 17명, 부상자만 50명이 넘었다.

잠자리에 들 시간에 난 갑작스러운 지진에 무너지는 집에서 간신히 허겁지겁 뛰쳐나온 주민들은 여진의 공포와 영하의 추위에 밤을 지새웠다고 했다.

맨손으로 잔해를 치우고 그 아래 깔린 가족을 구하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메마른 땅을 일궈 밀과 옥수수 농사를 짓고 이라크를 종종 오가며 ‘생계형 밀수’로 살림을 꾸리는 이들은 매우 가난하다.

얼기설기 쌓은 흙담과 철근없이 벽돌을 시멘트로 접착해 벽을 올린 단층집에 산다.

자연의 위력은 이런 가난한 이들의 허약한 집을 단 몇 초 만에 집어삼켰다.

이번 지진의 규모는 7.3이었다. 원자력발전소의 내진 설계 기준 7.0보다 더 강한 에너지를 뿜어낸 셈이다.

사르폴레자헙은 한국으로 치면 그나마 번화한 읍내라고 할 수 있다.

아파트와 현대식으로 지어진 상가와 관공서를 볼 수 있다.

이런 건물도 이번 강진으로 온전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뼈대는 진동을 견뎌 이재민이 남은 세간살이라도 건지러 들어갈 수 있었다.

읍내와 달리 산속 마을의 집은 그렇지 못했다. 벽돌로만 지탱했던 벽이 힘없이 무너지자 천정이 땅으로 주저앉아 버렸다. 단 한 채도 성하지 못했다. 가난했지만 산을 벗 삼아 자라던 마을 아이들은 도로 옆에 줄지어 서서 자동차가 지나갈 때마다 처음 보는 외부인에게 “신의 자비를”이라고 외치면서 손을 내밀어 구걸해야 하는 신세가 됐다.

한 60대 마을 주민은 “서로 사이좋게 잘 살았는데 이제 구호품 차가 올 때마다 하나라도 더 차지하려고 몸싸움하고 화를 내야 한다. 슬프다”라고 말했다.

지진이 난 지 이틀 반만인 15일 오후 처음으로 적신월사의 구급차와 이동식 병원으로 개조한 버스가 이런 마을을 돌며 진료했다.

두 살배기를 안은 한 여인이 구급차에 달라붙어 병원에 데려가 달라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구급차의 의사는 “다른 마을을 돌고 2시간 뒤에나 올 수 있다”면서 “지금 주변 병원이 부상자로 가득 차서 아이를 치료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이번 지진의 부상자는 8천명을 헤아린다.

의사의 말을 들은 이 여인은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흐느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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