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승용 농촌진흥청장 인터뷰
라승용 농촌진흥청장은 18일 남북 관계 개선에 따른 협력 방안에 대해 “북한의 토종 종자 등 유전자원 보존 문제가 첫 단추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라 청장은 이날 전북혁신도시 청사 집무실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2007년 10·4 남북 정상회담 후 11·16 총리회담에서 ‘유전자원 저장고 건설 등을 금년 중에 착수한다’고 합의했다. 남북 관계가 진전되면 북측이 먼저 (유전자원센터 건립) 이행을 요청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이같이 말했다.라 청장은 또 “1991년부터 28년째 북한의 곡물 생산량에 대한 추적 연구를 진행해 왔다”면서 “체계적인 농업 기술 연구와 이전을 위해서는 ‘북방농업연구소’(가칭) 건립을 구체적으로 검토할 때”라고 강조했다. 고졸, 9급 출신으로 정무직(차관급)까지 오른 라 청장은 40여년의 공직 생활 동안 농업 연구라는 한 우물을 팠다. 다음은 일문일답.
라승용 농촌진흥청장이 18일 전북혁신도시 청사 집무실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농업 분야의 남북 협력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농촌진흥청 제공
농촌진흥청 제공
-자원 전쟁 시대다. 북한은 유전자원을 체계적으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 한랭지역 고유의 유전자원이 소실될 우려가 있다. 해외 종자를 쓰다 보면 토종 종자에 대한 유실 우려도 커진다. 내한성이 뛰어난 우리 밀이 없어졌듯 유전자원은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 우리나라는 중복 보존 시스템(2007년 수원, 2014년 전주)을 갖췄다.
→2007년 유전자원센터 건립 당시 해외로 유출된 토종 유전자원 4422점을 돌려받았다는데.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이 가져간 유전자원, 6·25 전쟁 이후 ‘미스김라일락’(한국 토종 식물인 털개회나무 종자를 개량) 등 미국이 가져간 유전자원 등을 돌려받았다. 독일에서는 북한의 재래배추 종자 등을 가져오는 성과도 있었다. 북한 유전자원의 일부는 냉전 당시 동독을 비롯한 동유럽으로 넘어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북방농업연구소는 왜 필요한가.
-농진청 안에 ‘남북기술협력지원단’이 설치돼 있지만 서류상의 조직에 그치고 있다. 품종 하나 만드는 데만 12~15년이 걸린다. 미리 준비해야 허둥대지 않는다. 식량 문제를 해결해야 통일 비용이 적게 든다.
→2007년 이전의 남북 교류 방식에서 개선해야 할 점은.
-민간 주도로 이뤄져 지원이 중복되고 체계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지 못했다. 농기계를 지원한 현장에 가 보니 그냥 서 있었다. 무리해서 운행하다 고장난 것이었다. 들키면 혼날까 봐 깨끗하게 닦은 뒤 세워 놓은 것이다. 정부와 민간의 역할 분담이 제대로 이뤄져야 국가 자원에 대한 효율적인 지원이 가능할 수 있다.
→북한에 직접 다녀온 경험은.
-2004년부터 2007년 사이에 4~5차례 다녀온 경험이 있다. 첫 방북은 2004년 금강산 외곽 북고성 지역에 시범 농장을 운영하면서다. 북한의 주체 농법과 우리 농법을 비교해 보자는 취지였다. 실제 수확량은 2배 이상 차이가 났다.
→남측 농업 기술의 우월성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왜 적용이 안 되나.
-(주체 농법이라는) 체제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당시 액비(축산 분뇨) 지원을 제안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생산량을 올리는 것보다 토양 유기물 함량을 높이는 게 더 시급하다. 북한의 토양은 우리나라 1960년대 수준이다. 볏짚을 땔감으로 쓰다 보니 토양에 유기물 성분이 거의 없다.
→북한 농업의 현주소를 평가한다면.
-최근 사유 경작을 일부 인정하면서 생산성이 나아진 측면도 있지만 큰 변화는 없다. 북한 전체적으로 비료는 40만t 정도가 부족한 것으로 추정된다. 곡물 필요량은 550만t가량인데 생산량은 470만~480만t 수준이다.
→최근 10여년 동안 남북 교류가 단절됐는데 어떻게 북한의 식량 사정을 알 수 있나.
-북한의 곡물 생산량에 대한 추정 연구는 1991년부터 28년째 진행해 왔다. 북한과 위도나 기후 환경 등이 유사한 강원 철원·평창·진부와 국제공동연구를 통해 중국 옌벤 등지에서 작물 실험을 꾸준히 실시하고 있다.
→추정 연구의 정확성은 얼마나.
-북한의 통계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다. 다만 2007년 북한 농업성 국장을 만났을 때 감자 생산량을 묻자 포켓 수첩을 꺼내 보는 걸 슬쩍 봤는데 우리 추정치와 실제 생산량이 거의 맞아떨어졌다. 추정 연구는 그동안 쌓인 노하우를 바탕으로 재배 정보, 기상 상황, 실험 데이터를 종합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농업 기술 수준을 평가한다면.
-세계 5위 수준이다. 해외에서 더 인정받는다. 공적개발원조(ODA)의 일환으로 2009년부터 추진하는 해외농업기술개발사업(KOPIA)이 대표적이다. 돈이 아니라 기술력으로 현지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다. 현재 20개국에서 KOPIA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올해 가나에 센터를 추가로 지을 예정이며 아제르바이잔 등 13개국에서도 센터 건립을 요청한 상태다.
→KOPIA와 별개로 농식품기술협력협의체도 주도하고 있는데.
-국제기구로 승격될 가능성이 있다. 농업 분야의 공동 연구를 위해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 등의 45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해당 국가에서는 장관들이 직접 나서 협의체에 참여할 정도로 관심이 뜨겁다. 록펠러재단 등 민간에서도 참여 의사를 밝히고 있다.
전주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2018-03-19 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