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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철 칼럼] 윤상 음악감독을 위하여

[서동철 칼럼] 윤상 음악감독을 위하여

서동철 기자
서동철 기자
입력 2018-03-21 21:06
업데이트 2018-03-21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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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철 논설위원
서동철 논설위원
지난 1월 15일 판문점에서 열린 북한 예술단의 평창동계올림픽 파견을 위한 실무접촉에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이 북측 대표단에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보고 우리측 관계자들은 “아차” 싶었을 것이다. 북측 단장은 권혁봉 문화성 예술공연운영국장이었지만 스포트라이트는 단연 현 단장의 몫이었다. 그가 사전점검단과 예술단의 방남에서도 주도적 역할을 했던 것을 우리는 잘 기억하고 있다.

현 단장은 북한의 인기 가수라고 한다. 대중예술인이 정부 대표단에 참여해 이런저런 주요 결정을 내리는 모습을 보는 것은 우리에게 다소 낯설다. 삼지연관현악단이나 모란봉악단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북한이 정치적 수단으로 만든 국가기관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렇다 해도 현장 예술가 출신인 그가 행사하는 권한은 상당히 크다는 느낌이었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우리 예술단의 평양 공연을 위한 남북 실무접촉에 우리측 수석대표를 작곡가이자 가수인 윤상에게 맡긴 것은 매우 신선하다.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열리는 중요한 이벤트다. 우리가 주도해 북측 예술단의 올림픽 공연을 이끌어내면서 ‘남북 문화교류의 재개’라는 큰 틀의 성과를 이끌어내는 데는 성공했으되 이슈메이킹에서는 수세에 몰렸다는 인식이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남측의 윤상 대표와 북측의 현송월 대표는 그제 판문점 접촉에서 환한 표정으로 마주 앉아 공연 내용을 조율하고 절차를 협의하는 전에 없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남북 관계는 자유 낙하하는 사기그릇처럼 깨지기 직전의 상태였으니 성급한 기대는 당연히 금물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날의 장면은 남북 관계가 과거와는 다른 차원으로 접어들고 있음을 상징하는 듯싶다.

그런데 북측이 남북 교류 국면에 현 단장을 내세운 것과 우리가 윤 대표로 대응한 것 모두 북측 주민을 소외시킨 남측 국민만을 상대로 한 이미지전(戰)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없지는 않다. 북측 주민들에게는 현 단장이 남측 공연에 단장으로 나서는 것이 새삼스러울 리가 없다.

북측 주민들이 얼마나 윤상 대표를 알고 있는지도 미지수다. ‘자신의 음악 세계를 확고하게 구축한 대중음악인’이라는 윤상에 대한 인식은 남측에만 국한됐을 가능성이 크다. 윤상이 누군지를 제대로 모른다면 판문점 실무 접촉의 ‘그림’ 또한 우리가 보는 것처럼 신기할 리 없다.

남측 예술단의 평양 공연은 북측 주민들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하나의 작품이 되었으면 좋겠다. 윤상 대표는 남측 예술단의 음악감독이라는 또 하나의 직함을 갖고 있다. 사전적 의미에 함몰될 필요는 없겠지만, 감독이란 작품 생산 과정에 권한을 행사하되 결과에는 책임을 져야 하는 직책이다. 윤상 감독에게 자신의 음악관을 펼칠 수 있도록 명실상부한 음악감독의 지위를 부여하자는 것이다.

강릉과 서울에서 각각 한 차례 펼쳐진 북측 예술단의 올림픽 공연은 광고 용어를 빌려다 쓰자면 소구(訴求) 대상이 매우 뚜렷했다. 자신들의 음악 세계를 보여 주기보다는 남북 문화 교류 자체에 감격하고, 어떤 공연 내용에도 손뼉칠 준비가 되어 있는 관객층을 타깃으로 했다. 공연은 의도만큼의 성공은 거두었다.

개인적으로 평양 공연의 콘셉트를 삼지연관현악단처럼 통일로 삼는 데서는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싶다. 북측 주민들이 그럴 것이라고 예상하는 공연이 아니라 우리가 보여 주고 싶은 공연을 해야 한다고 본다. 비판 정신이 담긴 노래로 체제를 흔들거나 보지도 듣지도 못한 장르로 낙후성을 강조하라는 뜻이 아니다.

그저 한반도 남쪽 사람들이 즐기는 음악의 양상을 보여 주는 자리면 좋겠다. 윤상 감독도 “북에 계신 동포 여러분께 한국에서 보여 드리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똑같은 감동과 어색하지 않음을 전해 드리는 게 첫 번째 숙제”라고 말했다고 한다. 출연진의 다양한 노래와 연주를 어떻게 감동적으로 꿰어 낼 수 있느냐는 음악감독의 역량에 달려 있다. 제약하기보다 자유를 주는 것이 당연한 전제다.
2018-03-22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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