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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희 별세, 신상옥 감독 곁으로…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던 삶

최은희 별세, 신상옥 감독 곁으로…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던 삶

입력 2018-04-16 21:20
업데이트 2018-04-16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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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최은희씨가 16일 오후 지병으로 별세했다. 92세.
배우 최은희씨 92세로 별세
배우 최은희씨 92세로 별세 배우 최은희씨가 16일 오후 지병으로 별세했다. 92세. 2018.4.16
서울신문
최은희씨의 가족은 “오늘 오후 병원에 신장 투석을 받으러 가셨다가 임종하셨다”고 밝혔다.

‘마음의 고향’(1949)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 ‘성춘향’(1961) 등으로 김지미, 엄앵란 등과 함께 1950~60년대 원조 트로이카로 떠오른 최은희씨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을 살았다.

1953년 다큐멘터리 영화 ‘코리아’에 출연하면서 거장 신상옥 감독과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 최은희씨는 1954년 결혼했다. 최은희·신상옥 부부는 이후 한국 영화의 중흥기를 이끌었다.

‘어느 여대생의 고백’(1958)으로 대종상의 전신인 문교부 주최 제1회 국산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미군 사진병이 촬영한 최은희
미군 사진병이 촬영한 최은희 배우 최은희가 16일 오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사진은 1953년 8월 한국전 휴전이후 미군 사진병 폴 굴드 슐레징거가 촬영한 배우 최은희. 2018.4.16
연합뉴스 자료사진
고인은 배우이자 우리나라의 세번째 여성 감독이기도 했다. ‘민며느리’(1965) ‘공주님의 짝사랑’(1967) ‘총각선생’(1972) 등을 연출했다. 감독 겸 배우로 출연한 ‘민며느리’로는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1967년에는 안양영화예술학교의 교장을 맡아 후진 양성에도 힘을 쏟았다.

이후 신상옥 감독과 이혼한 최은희씨는 1978년 1월 혼자서 홍콩에 갔다가 북한 공작원에 납치됐다. 그리고 신상옥 감독도 그해 7월 납북돼 1983년 북한에서 믿지 못할 재회를 하게 된다.

두 사람은 북한 당국의 전폭적인 후원 하에 신필름 영화 촬영소 총장을 맡으며 ‘돌아오지 않는 밀사’(1984), ‘사랑 사랑 내 사랑’(1984) 등 모두 17편의 영화를 찍었다.

최은희씨는 북한에서 제작한 영화 ‘소금’으로 1985년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이는 한국인 최초 해외 영화제 수상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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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최은희씨 별세
배우 최은희씨 별세 배우 최은희가 16일 오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사진은 1961년 신상옥 감독 작품 ’성춘향’에 여주인공으로 출연한 최은희 씨. 2018.4.16
연합뉴스 자료사진
신상옥 감독과 최은희씨는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신임을 얻은 뒤 1986년 3월 오스트리아 빈을 방문한다. 이 때 기회를 틈타 미국 대사관에 진입, 망명에 성공한다. 이후 10년이 넘는 망명 생활을 하다가 1999년 영구 귀국했다.

고인은 2001년 극단 ‘신협’의 대표로 취임했고, 2002년 뮤지컬 ‘크레이즈 포 유’를 기획·제작했다. 2007년에는 자신의 영화 인생을 담은 자서전 ‘최은희의 고백’을 펴내기도 했다.

2006년 4월 11일 신 감독을 먼저 떠나보낸 뒤 고인은 허리 수술을 받는 등 건강이 악화됐고, 영면하기 직전까지 일주일에 세 번씩 신장 투석을 받아왔다. 유족으로는 신정균(영화감독)·상균(미국 거주)·명희·승리씨 등 2남 2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12호실 이전 예정)이며, 발인은 19일 오전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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