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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승리·축제… 베토벤 교향곡은 그의 삶을 닮았다

자유·승리·축제… 베토벤 교향곡은 그의 삶을 닮았다

김성호 기자
입력 2018-08-02 17:54
업데이트 2018-08-03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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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 중독 아버지 대신에 가장 노릇
그에게 프랑스 대혁명은 희망 그 자체
9개 교향곡 키워드는 고통… 사랑·평화


베토벤 아홉 개의 교향곡/나성인 지음/한길사/416쪽/1만 5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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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틸러의 ‘루트비히 판 베토벤’(1824). 고통 속에서 자유를 갈망했던 베토벤은 아홉 개의 교향곡을 통해 만인을 위한 세상의 변혁을 외쳤고 그 몸부림의 끝은 사랑과 평화로 귀결된다. 한길사 제공
슈틸러의 ‘루트비히 판 베토벤’(1824). 고통 속에서 자유를 갈망했던 베토벤은 아홉 개의 교향곡을 통해 만인을 위한 세상의 변혁을 외쳤고 그 몸부림의 끝은 사랑과 평화로 귀결된다. 한길사 제공
1800년 4월 2일 오스트리아 빈 궁정극장 무대에서 초연된 베토벤 교향곡 제1번. 25분간 연주된 이 곡은 유럽 음악의 심장부를 요동치게 했다. 당대를 풍미하던 모차르트며 하이든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면서도 크게 다른 음악. 후대에 그 교향곡 제1번은 비단 음악계뿐만 아니라 사회마저 변화시킨 전환의 큰 계기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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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음악은 자신과 꼭 닮아야 한다’고 늘상 외쳤던 베토벤(1770-1827). 흔히 ‘악성’이라 불리는 그는 평생 아홉 개의 교향곡을 남겼다. 종교적 요구나 귀족의 여흥에 복속됐던 음악가들은 절대음악을 추구하며 독립성과 예술적 자유를 쟁취해 갈 수 있었다. 그 절대음악은 계몽의 산물이었고 교향곡은 그 대표 장르였다. 책은 그 사회적 변혁과 맞물려 확산된 교향곡의 최고봉인 베토벤의 숨은 면모를 추적해 흥미롭다.

아홉 개의 교향곡에 투영된 베토벤의 이미지는 자유와 승리, 그리고 축제로 요약된다. 궁정가수였던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으로 일자리를 잃자 소년가장 노릇을 했던 베토벤. 그에게 프랑스대혁명은 희망의 메시지였다.

베토벤 교향곡의 탄생은 그 새로운 세상의 시작과 맞물려 있다. ‘자유를 모든 것보다 사랑하고, 왕 앞에 불려가서도 결코 진리를 부인하지 말자.’ 1793년 5월 23일 남긴 짤막한 메모는 베토벤 교향곡 탄생의 서곡이다.

“베토벤의 교향곡은 개인과 사회, 예술과 현실 양면에서 다층적인 의미를 전달한다.” 저자가 책을 통해 드러내는 베토벤 교향곡의 묵직한 정의이다. 당시 계몽사상은 음악을 즐기는 방식에도 변화를 일으켰다. 연주회장을 벗어나 자기 집에서 음악을 즐기려는 음악대중이 형성됐던 것이다. “교향곡은 바로 ‘합리적인 사회는 진보한다’는 신념의 표현이었다.” 이 표현대로 베토벤은 음악에 자유와 진보를 담고자 했고 그에 가장 적합한 장르가 교향곡이었다. 그 파격성을 놓고 한 연주 경연에서 베토벤에게 패한 겔리네크(1758-1825)는 이렇게 쓰고 있다. “그는 악마와 손을 잡은 게 틀림없어.”

교향곡 1번이 예술가로 자기 세계를 구축한 단초라면 교향곡 2번은 청력을 상실하는 절망을 딛고 찾아낸 삶의 의미를 담고 있다. 3번이 자유로운 창조의 이야기라면 4번은 사랑의 감정이 피워낸 조화로움의 세계, 5번은 운명에 맞선 승리를 각각 그리고 있다. 그런가 하면 6번은 자연에서 만난 낙원, 7번은 영웅과 민중이 함께 벌이는 축제, 8번은 작곡가의 신랄한 자기 풍자, 9번은 인류애의 노래로 인상 지어진다. 그 교향곡의 궤적을 훑어 건져낸 베토벤의 철학과 음악 이야기가 새삼스럽다.

3번 교향곡 ‘영웅’에서 베토벤의 자유, 평등 사상은 여실히 느껴진다. 나폴레옹을 위한 것이라고 알려진 ‘영웅’의 원래 모티프는 제우스로부터 불을 훔쳐 인간에게 전해준 프로메테우스다. 잘못된 권위에 저항해 특권층 전유물이었던 자유를 빼앗아 보통 사람들에게 선물하려 했던 나폴레옹 아닌가. 하지만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른 나폴레옹에게 배신감을 크게 느낀 베토벤은 원래 붙였던 나폴레옹의 이름 보나파르트 대신 ‘영웅’ 타이틀을 붙이고 부르짖었다고 한다. “그 또한 평범한 사람과 아무것도 다를 게 없군.”

베토벤의 교향곡들은 발표될 때마다 음악사의 지형을 바꿔놓았다. 사랑의 상실, 혁명의 실패, 가난, 귓병…. 아홉 개의 교향곡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바로 고통이고 그 고통의 끝은 사랑과 평화이다. ‘만인을 형제로 끌어안는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던 베토벤이다. 그래서 그의 마지막 교향곡 합창은 민주 시민혁명을 상징하는 음악으로 통하고 줄곧 평화의 상징으로 불려진다. 그리고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2018-08-03 3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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