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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화미심… 연꽃 보고 있자니 마음도 고와진다

관화미심… 연꽃 보고 있자니 마음도 고와진다

입력 2018-08-09 17:20
업데이트 2018-08-09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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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정원’ 경기 양평 세미원

짧은 장마가 지나가더니 햇볕의 기세가 맹렬합니다. 한증막에 들어선 듯 숨이 턱턱 막혀 이곳이 한국인지 동남아인지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무더위에도 제 일에 열심인 꽃이 있습니다. 계절을 아랑곳하지 않고 꽃잎을 틔우는 일에 열중하는 꽃, 연꽃입니다. 연꽃의 고고한 자태와 고운 색을 보노라면 여름이 연꽃의 계절임을 실감하게 됩니다. 경기 양평의 세미원에는 지금 연꽃이 한창입니다. 연과 연 사이를 거닐며 연향에 취해도 보고, 넘실거리는 연꽃 바다에 무시로 감탄도 합니다. 이곳은 정말, 연꽃이 한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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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고고한 자태와 은은한 향기를 지닌 연꽃을 감상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세미원의 페리기념연못에 피어 있는 연꽃이 분홍빛 한복으로 단장한 여인을 닮은 듯 우아하다.
여름은 고고한 자태와 은은한 향기를 지닌 연꽃을 감상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세미원의 페리기념연못에 피어 있는 연꽃이 분홍빛 한복으로 단장한 여인을 닮은 듯 우아하다.
십 가지 연꽃이 활짝… 19일까지 연꽃문화제

‘관수세심(觀水洗心) 관화미심(觀花美心)’이라 했다. ‘장자’의 말로 ‘물을 보며 마음을 씻고 꽃을 보며 마음을 아름답게 하라’는 뜻이다. 세미원이라는 이름은 이 문구에서 따왔다. 세미원은 물과 어우러진 연꽃 정원이다. 6월 중순부터 8월까지 홍련과 백련을 포함해 수십 가지 연꽃이 피는 만큼 여름에 찾는 이가 가장 많다. 세미원 연꽃문화제가 열리는 19일까지는 오전 7시부터 밤 10시까지 문 여는 시간을 연장한다.

세미원이 처음부터 연밭이었던 건 아니다. 연밭 부지는 15년 전만 해도 상류에서 떠내려온 쓰레기들로 가득했다. 상수원 보호구역이라고 사람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두른 철망이 오히려 독이 됐다. 철망에 쓰레기가 걸리며 수질은 더욱 악화됐다. 주민들과 환경단체는 힘을 합쳐 수질 정화 능력이 뛰어난 연을 심기 시작했다. 여기에 경기도의 지원을 받아 2004년, 세미원이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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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들이 홍련지에 꽉 들어차 바다를 이룬 듯한 연꽃을 촬영하고 있다.
관광객들이 홍련지에 꽉 들어차 바다를 이룬 듯한 연꽃을 촬영하고 있다.
백자 청아함 닮은 백련지… 한복 차려입은 듯 홍련지

여기도 연꽃, 저기도 연꽃. 어느 곳을 보아도 연꽃이다. 여름 바람이 일렁이자 연꽃들이 일제히 춤을 춘다. 연꽃의 파도가 밀려온다. 세미원에서 연꽃을 볼 수 있는 곳은 크게 세 곳. 홍련지, 백련지, 페리기념연못이다. 홍련지의 붉은 연꽃은 끄트머리로 갈수록 색이 붉어진다. 하얀 듯 불그스름하고 불그스름한 듯 하얗다. 안내판에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모습’ 같다는 설명이 있다. 말 그대로다. 홍련은 연지 곤지 찍고 분홍빛 한복으로 단장한 여인을 닮았다. 바라볼수록 우아한 자태요, 뜯어볼수록 오묘한 색이다. 5000㎡ 연못에는 움푹 들어간 나무 데크 두 개가 있어 사진을 찍기 좋다. 이른 아침부터 대포 같은 카메라를 든 사람들도 여럿이다.

백련지의 흰 연꽃은 백자의 청아함을 닮았다. 백련지 가운데에는 연못을 가로지르는 다리, 일심교가 놓여 있다. 돌다리는 두 사람이 동시에 지나가기 어려울 정도로 폭이 좁다. 딴생각에 빠지지 말고 지금 내딛는 한 발에 집중하라는 의미일 터. 연잎이 워낙 크다 보니 다리를 건널 때 어쩔 수 없이 연잎을 스치게 된다. 바다의 물살을 가르듯 연잎의 바다를 헤치고 나아가는 기분이 근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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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기념연못을 가득 메운 커다란 연잎과 오묘한 색의 연꽃이 장관이다.
페리기념연못을 가득 메운 커다란 연잎과 오묘한 색의 연꽃이 장관이다.
연꽃 단지 중 유독 사람이 몰린 곳, 세계적인 연꽃 연구가 페리 슬로컴 박사의 이름을 딴 페리기념연못이다. 이곳의 연은 페리 박사가 손수 개발해 세미원에 기증한 것들이란다. ‘미세스 페리 디 슬로컴’, ‘더 퀸’이라는 이름의 연꽃들은 화려한 외양을 뽐낸다. 연보다는 새색시의 부케 같다. 뭉게구름처럼 뽀얀 미색의 꽃잎이 겹겹이다. 그 모습이 어찌나 탐스러운지 카메라를 든 이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연못 앞에는 기와지붕을 올린 정자가 있다.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는 이들의 표정이 평온하다. ‘관화미심’, 연꽃을 보고 저도 모르게 마음이 고와진 탓일 게다. 연꽃만큼 정원의 면면도 어여쁘다. 냇가에 놓은 돌다리 길, 한강 물이 솟아오르는 장독대 분수, 탁족할 수 있는 세족대, 돌 빨래판으로 만든 산책길 세심로, 모네의 그림 ‘수련’을 재현한 사랑의 연못, 나룻배 52척을 연결하고 위에 목판을 얹은 배다리 등 각 구역이 짜임새 있다. 그중 세족대와 세심로는 직접 발을 담그고 걸어 볼 가치가 있다. 더운 날씨에 연꽃을 보겠다고 이리저리 발품을 팔았다면 세족대는 더위를 떨칠 수 있는 최고의 장소다. 세족대에는 탁족을 하며 몸과 마음을 씻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발을 씻으며 마음도 가다듬었던 옛 선비들처럼 말이다. ‘관수세심’(觀水洗心)에 걸맞은 공간이다.

세족대 물에 5분만 발 담가도 정수리까지 시원

세족대 물에 발을 담그면 ‘악’ 소리가 난다. 햇볕이 뜨거워도 물은 한겨울 얼음장처럼 차갑다. 5분만 발을 담가도 더워진 정수리까지 시원해진다.

깨끗함은 연꽃의 속성이다. 진흙탕에서 자라지만 진흙에 물들지 않는다. 오물에서 피어도 향기가 그윽하다. 세심로는 빨래판에 옷을 빨 듯 길을 걸으며 마음의 때를 씻어내라 한다. 빨래판 모양의 길을 걷는다고 때 묻은 마음이 금세 깨끗해지지는 않겠지만, 연꽃과 나란히 걸으며 발걸음 하나하나에 집중해 본다. 어젯밤 든 부정적인 생각, 그 전날 내뱉은 가시 돋친 말을 빨래판 길에 툭툭 털어 본다. 맑은 꽃을 닮고 싶다는 마음을 품어 본다. 세미원의 화두, ‘관수세심 관화미심’을 행하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연꽃을 보고 사진을 남기는 것이 아니던가. 세미원은 한낮보다는 이른 아침에 가는 편이 낫다. 연 꽃봉오리가 아침에 열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햇볕을 피할 수 있는 그늘이 적기 때문이다. 햇빛을 가릴 모자나 양산은 필수다.

글 이수린 유니에스 여행작가·사진 장명확 작가
2018-08-10 3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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