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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다큐] 600년 별빛 따라… 궁으로 숨어든 밤

[포토 다큐] 600년 별빛 따라… 궁으로 숨어든 밤

이종원 기자
입력 2018-09-06 22:26
업데이트 2018-09-07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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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밤 조선왕실 시간여행 ‘경복궁 별빛야행’

경복궁 별빛야행의 백미인 경회루 탐방. 연못을 앞에 두고 조명과 어우러진 2층 누각에서 거문고 연주자가 관람객을 맞이하며 힘 있게 술대를 내려치고 있다.
경복궁 별빛야행의 백미인 경회루 탐방. 연못을 앞에 두고 조명과 어우러진 2층 누각에서 거문고 연주자가 관람객을 맞이하며 힘 있게 술대를 내려치고 있다.
고궁이 새로운 ‘문화허브’로 자리잡고 있다. 역사와 예술을 결합한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옛 궁궐 안에서 펼쳐진다. 한국문화재재단에서 진행하고 있는 ‘경복궁 별빛야행’은 한낮의 번잡함을 벗어난 고궁에서 품격 있는 왕실문화를 만끽할 수 있는 ‘힐링 프로그램’이다.
조명으로 꾸며진 근정전의 단청을 배경으로 청사초롱을 들고 걸어가는 관람객들.
조명으로 꾸며진 근정전의 단청을 배경으로 청사초롱을 들고 걸어가는 관람객들.
은은한 별빛이 짙게 드리워진 경복궁. 손마다 청사초롱을 쥔 관람객들이 한껏 들뜬 기분으로 고궁 나들이에 나섰다. 조선 시대 궁중 의상을 차려입은 상궁이 옛 말투로 관람객을 안내한다. 흥례문(興禮門)의 중문이 열리고 동편 회랑(回廊)을 지나 별빛이 비추는 길을 따라가니 왕세자가 글을 읽던 비현각(丕顯閣)이 모습을 드러낸다. 실제 과거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일으킬 만큼 배우들이 당시 세자가 대신들과 함께 공부하는 모습을 재연하고 있었다.
소주방에서 관람객들에게 제공한 12찬 도슭(도시락의 옛말).
소주방에서 관람객들에게 제공한 12찬 도슭(도시락의 옛말).
궁중 부엌인 소주방에서 차비복 차림의 숙수(熟手)가 음식을 나르고 있다.
궁중 부엌인 소주방에서 차비복 차림의 숙수(熟手)가 음식을 나르고 있다.
본격적인 투어를 하기 전 들른 곳은 궁궐의 부엌인 소주방(燒廚房)이다. “주상 전하께서 여러분에게 특별히 진찬연을 베풀라 하셨지요”라며 수라간 상궁이 맞았고 ‘도슭(도시락의 옛말) 수라상’이 차려진 방으로 안내했다. 도시락이라 하여 요깃거리일 줄로만 알았는데 임금이 즐기던 12첩 반상이었다. 궁중 나인의 수발 속에 즐기는 만찬은 정갈하면서도 담백했다. 더불어 마당에서 열리는 퓨전국악 공연은 먹는 내내 입맛을 돋워 주었다.
경복궁 야간해설탐방의 길을 밝혀 주는 청사초롱.
경복궁 야간해설탐방의 길을 밝혀 주는 청사초롱.
식사 후 시작된 본격적인 고궁 산책은 이제껏 야간엔 공개하지 않았던 왕비의 처소인 교태전(交泰殿)으로 이어졌다. 금남(禁男)의 구역이었던 궁녀들의 생활 공간을 엿보는 흔치 않은 기회다. 전각에 들어가기 전에 보여 주는 세종과 소헌왕후의 사랑을 샌드 아트로 그려낸 영상이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윽고 둘러본 각각의 방은 단아한 고가구와 소박한 꽃들이 아

기자기한 모습으로 조화롭게 자리잡고 있었다. 다른 문양의 창호(窓戶)에서 퍼져 나오는 불빛이 은은하다. 내부 관람이 처음으로 허용된 함화당(咸和堂)과 집경당(緝敬堂)은 경복궁 내전의 침전(寢殿)으로서 우리 한옥의 건축미가 돋보였다.
고즈넉하면서도 화려한 경회루의 야경.
고즈넉하면서도 화려한 경회루의 야경.
후원을 거쳐서 다시 발걸음을 옮기니 별빛야행의 백미인 경회루(慶會樓)의 야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연못을 앞에 두고 조명과 어우러진 누각은 고요함 속에 고고한 멋을 발하고 있었다. 사라져 버린 왕조의 순간들이 물위로 아른거리는 듯하다. 낮에는 볼 수 없던 고궁의 비경을 카메라에 담는 관람객들의 손놀림이 바빠졌다. 별빛 아래 펼쳐진 왕실 조경의 진수에 모두가 흠뻑 취한 듯했다. 별빛야행에 참가하려고 휴가를 냈다는 회사원 민경배씨는 “낭만적인 감흥을 많이 받았고 특히 늦은 밤에 구경해 보니 자연과 하나가 되는 느낌”이라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신발을 벗고 2층 누각에 오르니 힘 있게 술대로 내려치는 거문고 소리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인왕산과 경복궁의 전각들은 물론 도심 속 빌딩의 야경까지 동서남북 방향에 따라 내려다보는 풍경이 사뭇 색다르다.
경회루 누각을 받쳐 주는 돌기둥이 고요함 속에 고고한 멋을 발하고 있다.
경회루 누각을 받쳐 주는 돌기둥이 고요함 속에 고고한 멋을 발하고 있다.
행사의 마무리는 근정전(勤政殿)에서 진행됐다. 조명으로 꾸민 밤의 근정전은 고즈넉하면서도 화려했다. 2단의 월대(越臺) 위로 세워진 경복궁 정전(正殿)의 자태가 당당하다. 월대를 둘러싼 난간 기둥마다에는 사신(청룡, 백호, 주작, 현무)과 십이지상 등이 배치돼 있다. 관람객들은 이곳저곳 놓칠 수 없는 장면을 둘러보기에 바쁘다. 학원 강사인 서지숙씨는 “조명 불빛 아래 화려함이 더해진 단청이 환상적”이라며 탄성을 터뜨렸다.조선 최고의 건축과 정원을 배경으로 운치를 더하는 ‘시간 여행’을 다녀온 초가을 밤. 600년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한 고궁은 우리 곁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글 사진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2018-09-0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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