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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빠르게… 더 강하게’ 강속구, 野史를 바꾸다

‘더 빠르게… 더 강하게’ 강속구, 野史를 바꾸다

입력 2018-09-27 17:50
업데이트 2018-09-28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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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의 눈으로 본 2018 메이저리그 <1>

2018년 미국 메이저리그 정규 시즌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오는 30일까지 팀당 162경기, 총 2430경기가 치러진 뒤에는 꿈의 ‘가을 야구’가 기다리고 있다. 2018년 메이저리그는 여느 때처럼 적지 않은 변화를 보였다. 전문가의 눈을 통해 2018 시즌을 정리하는 글을 4회에 걸쳐 게재한다.

야구가 늘 그랬던 것처럼, 2018년 메이저리그는 ‘예상대로 예측불허’였다. 월드시리즈 우승만이 유일한 관심이라던 LA 다저스가 정규시즌 내내 이렇게 고전할 줄 몰랐고, NL 동부의 절대 강자를 자처하던 워싱턴 내셔널스의 몰락은 끔찍하다. 팀 연봉 최하위(30위) 팀 오클랜드의 승리 행진과 포스트시즌 진출은 기적이랄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능가할 놀라운 일이 2018 메이저리그에서 이뤄졌다. 이후 ‘추세’를 이끌 만큼의 굵직한 변화였다. 눈에 잘 띄지는 않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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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선발 투수’ 개념의 변화

야구의 오랜 통설, ‘야구는 투수 놀음이다’는 대전제가 2018년 흔들리기 시작했다. 언제부턴가 야구 경기의 기본적 책임은 선발 투수가 지는 것이었다. 선발 투수는 6회, 7회 이상은 책임지는 것이 통념이었다. 2018년은 달라졌다. 투구 수로는 80~100구, 이닝으로 잘해야 5~6이닝만 던지고 승패와 무관하게 뒤에 줄줄이 기다리고 있는 불펜 투수들에게 마운드를 넘기는 것이 일상처럼 돼버렸다.

최지만 선수의 소속팀 탬파베이 레이스를 보자. 2018년 시즌을 앞두고 “경기 시작과 함께 1이닝, 많아야 2이닝을 책임지는 ‘시작 투수’(아직 뭐라고 불러야 할지 개념과 용어가 정립되지 않았다)를 2018년에 적극적으로 도입하겠다”고 발표했고 과감하게 실행했다. 스몰마켓 팀, 선수 연봉이 적고 스타 플레이어도 없는 팀의 도전적인 실험 정신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탬파베이 시즌 성적은 상당히 우수했다. 비록 보스턴 레드삭스, 뉴욕 양키스 명문팀에 막혀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했으나 탬파베이 레이스의 성적은 NL 서부지구 우승팀 LA 다저스와 대등하다. 탬파베이 레이스는 9월 15일 현재 82승 66패 승률 .554로 대단히 성공적인 시즌을 보내고 있다. 스몰 마켓 팀이 택할 수 있는 방법으로 오랜 기간 준비한 결과다. 그렇게 선발 투수의 이닝이 줄고, 시작 투수가 도입되는 변화. 그 서막이 2018년 오른 것이다. 이제 선발 투수는 그저 ‘처음 나온 투수’일 뿐이다.

‘사이영상’의 주인공 사이 영이 투수를 하던 시절 1901년, 보스턴 아메리칸스 (보스턴 레드삭스 전신) 소속 34세 사이 영 투수는 41경기에 선발 투수로 등판해 38경기를 완투했다. 총 371.1 이닝 투구, 33승 10패 방어율 1.67을 기록했다. 타고투저가 극심했던 ‘약물의 시대’, 선발 투수들이 천둥 같은 타자들을 견디기 몹시 힘들던 시절을 보자. 지금과 같은 30팀, 팀당 162경기 체제였던 2000년 시즌에 30팀 중 28개 팀의 선발 투수가 900이닝 이상을 책임졌다(표 참조). 2018년 시즌(평균 148경기, 9월15일 현재)은 총 802이닝, 평균 5.42이닝이다. 대신 불펜 투수는 평균 총 525이닝, 평균 3.55이닝을 책임졌다. 선발 투수가 5회를 마치고 6회를 넘기는 일은 이제 ‘특별한 경우’가 되어 가고 있다. 140년 역사상 처음으로 선발 투수의 총 투구 이닝이 600이닝, 평균 3.7이닝이 되지 않을 위기(?)에 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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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 만에 200이닝 이상 투수 1/3 급감

시즌 막판 부상으로 선발 투수가 바닥난 팀들을 중심으로 ‘불펜 데이’와 ‘시작 투수’를 실험하는 팀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 시즌 중에 텍사스 레인저스, LA 에인절스, 미네소타 트윈스 등 포스트 시즌 탈락이 확정된 팀에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같은 강팀까지 나서 불펜데이를 실험했다. 이에 따라 투수 개인 기록 역시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2000년 메이저리그에서 200이닝 이상의 투구를 기록한 투수가 36명이었고, 180이닝(30경기 6이닝) 이상을 던진 투수는 66명으로 팀당 2명이 조금 넘었다. 2018년은 200이닝 이상 10명 내외, 180이닝 이상 30명 내외로 대폭 줄어들 전망이다. 1901년 메이저리그 16팀 중 1이닝 이상이라도 투구를 한 투수 139명 가운데 19명의 투수가 300이닝 넘게 공을 던졌었다. 마지막 300이닝 투수는 1980년 필라델피아 필리스 스티브 칼튼 투수였다.

●타자는 홈런에 집중… 투수는 강속구에 올인

“‘많이 던지지 않는 선발 투수’는 야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결국 이것이 핵심이다.

우선 눈에 띄는 변화는, ‘선발 투수들도 강한 공을 던진다’는 것이다. 메이저리그 타자들이 ‘홈런 스윙’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은 2015년부터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타격 이론은 수평 스윙을 통한 라인드라이브성 타구를 좋은 타구라고 했다. 지금은 1~9번 타자까지 너 나 할 것 없이 홈런을 노리는 강한 ‘어퍼’ 스윙을 적극적으로 시작했다. “3할 타자는 포드를 타고, 홈런 타자는 캐딜락을 탄다”는 말이 있지만, 단지 ‘욕망’ 때문만이 아니다. 130여년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안타 2, 3개를 몰아친 뒤 이런저런 작전 끝에 짜내는 득점보다는 홈런 한 방으로 얻는 득점 확률이 높다는 결론 때문이다. 이제 야구는 홈런이다!

‘이기고자 한다면 홈런을 노려야 마땅하다.’ 슈퍼 컴퓨터는 야구에 이렇게 제시했다. 타자들의 스윙이 바뀌니, 타자를 상대하는 투수들의 전략과 콘셉트 역시 바뀔 수밖에 없다. 홈런을 맞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렇게 해서 강력한 속구의 시대가 열렸다. 다만 강한 공을 던지니 너무 힘들다. 선발이건 불펜이건, 투수들은 이제 오래 던질 수 없게 됐다.

메이저리그에서 투수로 살아남기 위해선 이제 ‘강한 공, 더 강한 공’을 던져야 한다. 팀은 싱싱한 어깨로 강한 공을 뿌릴 수 있는 불펜 투수를 4회고, 5회고 가리지 않고 마운드에 올릴 준비를 시작했다. 2018년 선발과 불펜을 오간 LA 다저스 일본인 투수 겐다 마에다는 불펜 투수로 마운드에 오르면 97마일짜리 공을 뿌린다. 짧고 강하게 집중한다. 선발일 때는 시속 92~93마일 속구를 던진다. 5회 이상을 던지려면 힘의 배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즌을 거듭하며 홈런도 시즌 최다 기록을 경신하지만, 한편 삼진도 시즌 최다 기록을 새로 고쳐 쓰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짧지만 강력한 공을 던지는 불펜 투수 스타일의 투구가 경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난 결과다. 야구의 중심에 삼진과 홈런이 우뚝 서는 경향은, 선발 투수 개념의 변화와 함께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물론 부작용도 없지 않다. 불펜 투수의 활용이 많아지면서, 경기가 뚝뚝 끊긴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강력한 투구를 해야 하는 투수들의 부상 역시 늘어난다. 140㎞ 이상의 공을 던지는 행위 자체가 부상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더 강한 공을 뿌리려다 보니, 부상의 위험도 커졌다. 그리고 야구 경기는 몹시 단순해지고 있다.

피닉스· 덴버·로스앤젤레스

■ 이강원 스포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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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원 스포츠 작가
이강원 스포츠 작가
전직 스포츠 마케터. 스포츠 마케팅사 스포티즌, 브리온 등서 임원 역임. ‘하룻밤에 읽는 메이저리그 시리즈’ 2014, 2015, 2016, 2017 저술. 매년 메이저리그 및 NBA, EPL, NBA 등 스포츠 현장 취재, 저술.
2018-09-28 3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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