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춘천’

“안녕하세요, 당신/그 어디쯤, 생각과 생각 사이의 공간에서/귀를 세우고 우리들의 앞길을 엿듣고 있는/같은 하늘 아래 근심에 싸인 당신,/당신의 탄식이 문득 우리를 불 밝혀주네요./너에게 주노라, 세상이 알 수도 없는 평화를/너에게 주노라, 너에게, 세상이 알 수도 없는.”
영화 ‘춘천, 춘천’
마종기 시인이 쓴 ‘춘천 가는 길’이라는 시의 일부다. 이 작품에는 경배의 대상인 ‘당신’과 명령의 상대인 ‘너’라는 2인칭이 나란히 쓰였다. 쉽게 생각하자. 한 편의 시 안에 두 명의 화자가 있다고 보면 된다. 둘 다 서로를 부르고, 긍정하며, 뭔가를 주기도 한다. 피차 긴밀하게 얽힌 존재라는 뜻이다.

영화 ‘춘천, 춘천’을 보면서 시 ‘춘천 가는 길’을 떠올렸다. 제목의 공통점 때문만은 아니다. ‘이중의 겹침’이 요점이다. 영화는 두 가지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는 청년 지현(우지현)의 이야기다. 춘천 토박이인 그는 서울에 직장을 구하는 중이다. 하지만 취업은 안 되고 지현의 자존감은 낮아지기만 한다. 그가 친구와 술을 마신 뒤 위태로운 모습을 보이고, 소양강 유람선을 타고 청평사에 들러 불상에 절을 한 까닭도 ‘마음대로 안 되는 마음’ 때문이었을 테다.

다른 하나는 중년 세랑(이세랑)과 흥주(양흥주)의 이야기다. 이들은 춘천으로 비밀 여행을 왔다. 왜 이 만남은 밝힐 수 없을까. 두 사람에게 각각 배우자가 있어서다. 불륜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영화에서 부차적인 요소에 불과하다. 핵심은 채팅으로 알게 된 세랑과 흥주가 반려자보다 더 많은 이해를 하는 사이로 발전했던, 춘천 이곳저곳을 같이 다녔던 근본적인 이유에 있다. 그 까닭은 지현과 마찬가지로 ‘마음대로 안 되는 마음’ 때문이었을 테다.
허희 문학평론가·영화칼럼니스트
이런 ‘춘천, 춘천’의 두 가지 에피소드는 별개이되 연결된다. 구체적으로는 경춘선 열차에 세 사람이 앉아 있던 장면, 춘천 마라톤 대회나 청평사 동선이 반복되는 장면 등이 그렇다. 그러나 시와 관련해 내가 염두에 둔 ‘이중의 겹침’은 또 다른 부분에 있다. 어떤가 하면 인물과 배경의 조응이다. 양자가 한 화면 안에 함께 녹아든다. (장우진 감독은 이를 공들여 찍었다.) 인용한 시로 설명하면 이렇다. 앞의 화자는 방황하는 세 사람으로 간주된다. 그들은 자신을 받아 주는 춘천을 ‘당신’이라고 지칭할 것이다. 그럼 자연스레 뒤의 화자는 춘천이 된다. 그는 세 사람을 염려하며 ‘너’라고 호명할 것이다.

“우리를 불 밝혀” 주고, “세상이 알 수도 없는 평화를” 안겨 주는 춘천이라는 배경. 그리고 이에 공명하는 세 사람의 인물. 그 포개짐 속에서 ‘마음대로 안 되는 마음’의 흔들림도 조금은 견딜 만해진다. 여기는 바로 “생각과 생각 사이의 공간”이니까. 그곳에 가고 싶다면 올가을엔 춘천행을, 그러니까 ‘춘천, 춘천’으로.

허 희 문학평론가·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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