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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미술관은 장기 전략 필요한 마라톤… 3년으로 성과 내기는 어려워”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미술관은 장기 전략 필요한 마라톤… 3년으로 성과 내기는 어려워”

이순녀 기자
이순녀 기자
입력 2018-11-15 22:22
업데이트 2018-11-16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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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녀 논설위원이 만났습니다 - 퇴임 한 달 앞둔 첫 외국인 국립현대미술관장 바르토메우 마리

국내 문화예술계 공공기관 첫 외국인 수장이자 국립현대미술관 최초 외국인 관장으로 주목받았던 스페인 출신 바르토메우 마리(52) 관장이 오는 12월 13일 임기 3년을 마치고 물러난다. 연초부터 연임 의지를 강하게 밝혔지만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9월 중순 관장 교체를 통보했다. 마리 관장 임명 당시 미술계는 들끓었다. 새로운 시도가 성공할지, 시행착오로 끝날지 모두가 반신반의했다. 연임이 되지 않았으니 실패한 걸까. 행정적인 판단은 그럴지 몰라도 아직 최종 평가는 남아 있다. 마리 관장이 기획한 전시와 출판·연구 프로젝트, 조직 개편의 결과물들이 이제 막 빛을 볼 참이기 때문이다. 임기를 꼭 한 달 앞둔 지난 13일 마리 관장을 만났다. 그는 “아쉬운 점은 이미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며 말을 아꼈지만 제한된 임기와 권한 등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선 목소리를 높였다. 마리 관장은 네덜란드 로테르담 비테 드 빗 현대미술센터 예술감독, 바르셀로나현대미술관장, 국제근현대미술관위원회 회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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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 만료를 한 달 앞둔 바르토메우 마리 관장은 “국립현대미술관처럼 규모가 큰 기관의 수장은 미술전문가일 뿐 아니라 숙련된 운영자여야 한다”면서 “후임 관장에겐 충분한 시간과 권한이 주어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임기 만료를 한 달 앞둔 바르토메우 마리 관장은 “국립현대미술관처럼 규모가 큰 기관의 수장은 미술전문가일 뿐 아니라 숙련된 운영자여야 한다”면서 “후임 관장에겐 충분한 시간과 권한이 주어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연임 의지가 컸던 만큼 남은 하루하루가 아쉬울 것 같다. 지금 가장 집중하고 있는 부분은.

-해외 유수 기관들과 중요 전시를 확정하고, 출판 프로젝트를 차질 없이 진행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해외 기관과 협업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은 긴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사업의 결과를 관장으로서는 보지 못할지라도 향후에 성공적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해 내면 뿌듯할 것 같다.

→임기 내내 ‘외국인 관장’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외국인 수장이란 공통점 때문에 전 월드컵 축구대표 감독 히딩크와 자주 비교되곤 했는데.

-이전에 일했던 기관에서도 ‘외국인 수장’이었던 적이 있는 나로서는 전혀 부담이 아니었다. 한국에서 일한 경험은 특별했고, 영광이었다. 많은 한국인들에게 히딩크가 영웅적인 인물이며, 그를 통해 한국인이 자부심과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히딩크에게는 업무에 대한 자율권이 주어졌다. 팀의 긴밀한 지원을 받아 어떤 선수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뛰어야 하는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다. 국립현대미술관장은 많은 규정에 의해 상당한 제약을 받는다. 축구는 경기 하나하나에 대한 전략이 중요하지만 미술관은 장기 기획과 연구, 안정성과 연속성이 중요하다.

→짧은 임기와 제한적인 권한에 대한 안타까움을 여러 번 피력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모델이 될 만한 해외 미술관 관장의 임기를 한 번 살펴보면 좋겠다. 영국 테이트 미술관은 니콜라스 세로타 관장이 27년 재임했다. 미술관은 장거리 마라톤 주자이지 단거리 스프린터가 아니다. 비전과 전략의 결과물을 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야 한다. 이런 점을 인지하지 못하는 게 국립현대미술관을 취약하게 만든다. 후임 관장에게는 목표를 성공시킬 수 있는 시간과 도구가 주어지길 바란다.

→취임 기자 간담회에서 임기 내 목표로 세 가지를 꼽았다. 국립현대미술관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 한국문화예술의 중심기관으로 만드는 것, 그리고 한국미술을 세계에 더 많이 알리는 것이었다. 성과와 한계를 꼽는다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구체적인 비전과 전략을 설계했지만 국립현대미술관처럼 규모가 큰 미술관에서 성과를 평가하기에 3년은 너무 짧다고 강조하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시적 성과는 있다. 지난달 과천관에서 개막한 ‘문명전’처럼 우리가 기획한 전시가 국내 전시 이후 해외 순회전을 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수준 높은 도록을 생산해 해외 서점에 유통할 수 있게 됐다. 또 ‘슈퍼휴머니티’, ‘미술관은 무엇을 연구하는가’ 같은 국제심포지엄을 통해 지적 담론을 생산하는 기관이자 현대미술과 문화에 대한 이슈를 토론하는 플랫폼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취임 초부터 ‘한국미술의 정체성’과 연관 지어 우려를 나타내는 목소리가 있었다. 문체부가 연임 불가를 결정한 배경에도 영향를 준 것으로 알려졌는데.

-한국인만 한국미술을 이해한다고 여기는 건 진부하다. 한 국가에서 생산된 미술의 정체성은 다수의 지적 주장이 상호작용해 구성되는 것이며 끊임없이 변화한다. 이 정체성이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한 합의는 절대로 이뤄질 수 없다. 한국미술은 스페인미술이나 인도미술처럼 혼합적이며, 정체성도 지속적으로 변하고 있다. 한국미술의 정체성이 단색화와 민중미술 간의 해묵은 대립으로 축소되어서는 안 된다.

→외국인 관장에게 기대했던 ‘한국미술의 세계화’가 미흡했다는 평가도 있다.

-국제적인 시스템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얼마나 알고 있을까 반문해 본다. 해외 미술관들은 프로그램을 3~5년 전에 기획한다. 따라서 미안하지만 의미 있는 비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한국이 근현대 미술에서 아시아의 수도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한국에 훌륭한 작가들이 많고, 한국 사회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아트마켓이 있는 홍콩과 공공 인프라 지원이 강력한 상하이가 가장 큰 경쟁 상대라고 볼 수 있는데 이런 여건을 고려하면 한국은 국제적으로 영향력이 큰 대형 전시를 기획해 우위를 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경험자로서 국립현대미술관장이 우선적으로 갖춰야 할 자질과 덕목은.

-큰 규모에 비해 아직 체계와 균형이 잡힌 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관장은 미술 전문가일 뿐만 아니라 숙련된 운영자여야 한다. 각 부서의 능력을 관리하고 정확한 지시와 공평한 관용을 통해 모두가 최고의 결과를 낼 수 있게 이끌어야 한다. 현재 조직구조는 미술관의 목표에 부합하지 않는다. 21세기형 공공미술관에 걸맞은 역량과 도구가 빨리 도입되어야 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이 내년에 50주년을 맞는다. 국립미술관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나.

-미술과 한국사회를 연결하는 것이다. 동시대 예술가들을 활성화시키는 역할을 하면서도 과거에 존재했던 예술가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내놓는 것이다. 한국 근대미술의 태동기를 일본 식민지 시대 이전 대한제국에 놓는 ‘대한제국의 미술전’(덕수궁관)이 그런 예다. 한국미술을 세계 무대에 널리 알리는 역할도 중요하다.

→앞으로 계획은.

-당분간 여유를 갖고 싶다. 새 관장을 찾고 있는 괜찮은 미술관이 여럿 있지만, 나의 모국인 스페인에서는 아직 요청이 없기 때문에 앞으로도 ‘외국인 관장’으로 일하게 될 것 같다.

coral@seoul.co.kr

공모제 이후 불명예 퇴진 잦아…부침 심한 국립현대미술관장

차기 국립현대미술관장 공모에는 13명이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사혁신처가 서류심사를 통해 5배수로 걸러낸 뒤 면접을 통해 2~3명을 추천하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결정하는 수순을 밟아 연말이나 내년 초에 임명될 예정이다.

개방형 직위제 이후 임명된 국립현대미술관장들은 부침이 심했다. 김윤수 전 관장(2003~2008년)은 한 차례 연임됐으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임기를 1년 남겨 두고 해임됐다. 미술품 구입 규정을 위반했다는 명목이었지만 대법원에서 해임 무효 판결을 받았다. 대우전자 CEO 출신인 배순훈 전 관장(2009~2011년)은 임기 4개월을 앞두고 자진 사퇴했다. “할 일을 다했다”고 이유를 밝혔으나 국정감사에서 야당 의원과 설전을 벌인 일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정형민 전 관장(2012~2014년)은 임기를 마치고 서울관 개관 작업을 위해 1년 연장된 상태에서 학예사 부당 채용 의혹으로 도중에 직위해제됐다. 자의든 타의든 불명예 퇴진이 잦은 건 미술계로선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국립현대미술관장의 위상과 권한, 임기 등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2018-11-16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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