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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은 ‘생존전략’이었다

상속은 ‘생존전략’이었다

김기중 기자
김기중 기자
입력 2018-12-13 17:56
업데이트 2018-12-14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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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의 역사/백승종 지음/사우/272쪽/1만 6000원
합스부르크 가문의 근친혼으로 희귀한 유전질환을 앓았던 스페인 왕 카를로스 2세. 주걱턱은 이 가문의 상징이었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근친혼으로 희귀한 유전질환을 앓았던 스페인 왕 카를로스 2세. 주걱턱은 이 가문의 상징이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상속세와 소득세 최고세율의 합이 가장 큰 나라는 일본(상속세 55%·소득세 45%)이고, 우리나라가 그다음이다. 상속세가 50%, 소득세가 42%에 이른다. 기업가들은 이를 피하려 온갖 편법을 쓰곤 한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을 위해 기업 가치를 의도적으로 부풀린 것으로 드러난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시민사회단체는 이를 주도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상속세를 내지 않고 편법으로 삼성그룹 경영권을 확보했다고 비판한다. 여전히 혈통을 중시하는 유교 문화 때문일까. 다른 나라는 자수성가해 부자가 된 이들의 비율이 70%에 이르지만, 우리나라는 70%가 상속으로 부를 일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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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작성된 유언장. 상속자의 부양 의무가 자세하게 적혔다.
1909년 작성된 유언장. 상속자의 부양 의무가 자세하게 적혔다.
●구약성경~조선시대 상속제도와 사회상

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교수가 쓴 ‘상속의 역사’는 이런 우리 상황 속에서 눈여겨봐야 할 신간이다. 동서고금에 걸쳐 상속의 역사를 훑는 책으로, 구약성경에서부터 조선시대, 동양과 서양을 아우르며 상속제도와 당시 사회상을 짚어 낸다.

상속제도는 단순히 재산을 물려주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누군가는 권력을 얻거나 부자가 되고, 누군가는 신분이 추락하거나 가난으로 내몰린다. 왕가의 상속 때문에 벌어진 싸움이 국제전으로 확산하고, 때론 국경이 달라지기도 했다.

●집단·사회·경제·문화 따라 달랐던 제도

집단·사회·경제·문화에 따라 상속제도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예컨대 18~19세기 독일의 한 유언장에는 “너(상속자)는 나(부모)에게 우유를 공급하고 죽을 때까지 우리를 돌봐야 한다. 그래야 내 재산이 네게 상속될 것이다”고 쓰여 있다. 그러나 한국, 중국, 일본과 같은 동아시아권에는 이런 유언장이 존재하지 않았다. 저자는 “유교 사회에서는 효도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라 분석한다. 효도가 자식의 당연한 의무인 사회에서 부모가 노후를 우려해 유언장을 남기는 일은 그 자체로 납득키 어렵다는 뜻이다.

유산을 누구에게 주느냐의 문제도 제각각이었다. 역사상 가장 널리 퍼진 상속제도는 부계상속이다. 장자의 특권적 지위를 인정하는 장자상속이 가장 일반적이지만, 막내아들이 상속하는 말자상속, 여러 아들이 나눠 갖는 균분상속, 형제가 공동으로 상속하는 공동상속도 있다. 농업사회에서는 장자상속이 보편화했지만, 유목사회에서는 말자상속을 선호한다. 농업사회보다 불안한 까닭에 부모가 좀더 오래 부양받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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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집정관 카이사르의 양아들 옥타비아누스의 동상. 로마에서는 귀족층이 정치적인 이유로 입양을 하곤 했다. 이들은 피가 섞이진 않았으나 양아버지의 권력을 이어 받았다.
로마 집정관 카이사르의 양아들 옥타비아누스의 동상. 로마에서는 귀족층이 정치적인 이유로 입양을 하곤 했다. 이들은 피가 섞이진 않았으나 양아버지의 권력을 이어 받았다.
암투가 횡행했던 로마는 귀족층이 정치적·경제적 고려에 따라 입양제도를 정착시켰다. 황제들마저 양자를 들이곤 했다. 카이사르가 죽은 뒤 양아들 옥타비아누스가 권력을 잡고, 옥타비아누스가 또 양아들 티베리우스에게 양위하는 과정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혈통을 중요하게 여기는 풍습이 강해지며 로마의 입양제도는 자취를 감춘다. 그러다 근대 유럽 사회에서 유아 유기와 고아의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다시 고개를 들다가 19세기 미국이 입양제도를 활성화하면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조선 역시 입양이 활발했지만, 생판 남이 아닌 형제나 친척의 아이를 입양하는 사례가 많았다.

저자는 서양 소작농이 먹고살기 위해 지주를 ‘대부모’로 삼은 일, 조선 양반들이 지위를 유지하고자 종가를 이루고 종손을 정하는 일에 사력을 다하는 모습을 들어 상속제도에 따른 생존전략을 살핀다. 이 밖에 재산을 지키고자 유전병에도 불구하고 근친혼을 서슴지 않았던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 결혼 당시 여성의 지참금 때문에 부인과 이혼하지 못했던 중세 귀족들의 실태 등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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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적 결과이자 사회 변화의 원인

저자는 동서양의 다양한 상속제도를 살핀 뒤, 상속제도가 사회·문화적인 결과이자 사회 변화의 큰 원인이라 결론짓는다. 모든 상속제도에서 공통적인 키워드가 있었는데, 다름 아닌 ‘생존’이었다. 바꿔 말하면, 상속제도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양극화, 부의 불평등과 같은 문제가 완화하거나 심각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쯤 되면 ‘올바른 상속제도란 어떤 것인가?’ 의문이 들게 마련이지만, 책은 바로 이 지점에서 멈춰 버린다. 동서고금의 상속제도를 살펴보고 당시 사회상을 살피지만, 구체적인 해결책은 내놓지 못한다. 역사가인 저자에게 해결책까지 요구하는 것은 무리이긴 하나, 책의 완결성으로 볼 때 아쉬운 부분이다. 또 워낙 방대한 역사를 오가며 각종 상속제도를 펼쳐 놓느라 시대별, 지역별 상속제도 간 적절한 비교가 미흡하다는 인상도 든다. 다만 상속제도와 사회변화를 묶어 내고 집단의 ‘생존전략’으로 본 점은 그 자체만으로 흥미롭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2018-12-14 3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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