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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나르기는 2차 가해… 자정 노력만큼 징역형 등 처벌 강화해야

퍼나르기는 2차 가해… 자정 노력만큼 징역형 등 처벌 강화해야

김유민 기자
김유민 기자
입력 2019-03-21 17:54
업데이트 2019-03-22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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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不·On)한 회의] 단톡방 성범죄 근절 방법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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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뱅 멤버 승리(본명 이승현)가 지난달 27일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지방경찰청으로 들어가고 있다. 승리는 가수 정준영 등과 함께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여성과의 성관계를 언급하며 몰래 촬영한 영상을 전송하고 지인과 수차례 공유한 혐의를 받고 있다. 스마트폰이 보편화되면서 단체 대화방의 성폭력은 연예계뿐 아니라 대학가와 직장에서도 꾸준히 문제로 제기돼 왔다.  연합뉴스
빅뱅 멤버 승리(본명 이승현)가 지난달 27일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지방경찰청으로 들어가고 있다. 승리는 가수 정준영 등과 함께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여성과의 성관계를 언급하며 몰래 촬영한 영상을 전송하고 지인과 수차례 공유한 혐의를 받고 있다. 스마트폰이 보편화되면서 단체 대화방의 성폭력은 연예계뿐 아니라 대학가와 직장에서도 꾸준히 문제로 제기돼 왔다.
연합뉴스
2000년대 초 한 연예인의 동영상 사건이 뜨거웠습니다. 영상은 당시 메신저 MSN을 통해 빠르게 퍼졌습니다. “IT 강국 한국의 초고속통신망 속도가 어느 정도인지 보여 준 사례”라는 농담도 있었고,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봐야 한다”는 무책임한 태도도 드러났습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가수 정준영·승리 등이 연루된 ‘성관계 동영상 유포’ 사건을 보고 있자니 씁쓸함이 가시지 않습니다. 여전히 ‘몰카’는 기승이고, 확산 속도는 LTE급입니다. 그나마 공유·유포는 범죄라는 인식이나 ‘2차 피해를 막자’는 자정이 자리잡고 있다는 건 희망적이랄까요. 이번 ‘불온(不on)한 회의’에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단체 대화방에서 이뤄지는 성범죄와 이를 근절하기 위한 방법을 논했습니다.

부장:‘난 소속된 SNS 단체 대화방, ‘단톡방’이 하나도 없다’ 이런 사람은 없겠지? 불편한 경험도 한 번쯤은 있을 듯한데.

진호:이번 정준영 사건이 불거지면서 제가 속한 대화방에서 ‘정준영 동영상’이라는 영상 파일이 올라왔어요. 교사인 친구는 말없이 대화방을 나갔고, 저 또한 눌러 보지 않고 나왔습니다. “이러지 말자”라고 얘기를 할까 아니면 그냥 나올까 고민하다가 후자를 선택한 거죠. ‘한마디 할걸’이라는 후회가 있었어요. 그래서 다른 단톡방에선 “2차 피해를 야기할 수 있는 링크나 영상은 올리지 않았으면 한다”고 주의를 줬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제 말 때문에 링크 보낸 사람이 무안하지 않게 화제 전환을 해서 그 방에선 그런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됐죠.

세진:동창들 단톡방에서 작년 초쯤 성적 농담이나, 이른바 사전 유출된 ‘영화 속 엑기스 영상’이 이따금씩 올라왔어요. 그런 모습을 보는 게 견디기 힘들어서 그 방을 나왔습니다.

현용:서로 잘 아는 사이이기 때문에 보통은 그런 일이 있어도 단톡방을 나가기 힘들죠. 유포만 하지 않으면 된다는 식으로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사람이 대부분일 겁니다. 사건이 터지면 경찰 수사를 통해 명단이 나오는데 이건 누가 퍼트리는지 잘 모르겠어요. 영화에선 조직적으로 퍼트리는 곳이 있다고 묘사하지만 실제로는 개인이 퍼트리는 것도 많을 듯해요.

유민:성적 농담은 예전에도 있었지만 국민 대부분이 스마트폰을 쓰는 요즘에는 단톡방을 통해 실시간으로 대화와 공유가 가능하다 보니 디지털 성범죄가 더욱 심각해진 것 같아요. 친구나 동료 등 친분 위주의 단톡방에선 불법적인 것을 공유하면서 좋지 않은 쪽으로 결속을 다지기도 하고요.

진호:사실 단톡방 나가기 전까지만 해도 인간관계 단절을 우려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더이상의 교류를 안 하는 게 더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유민:단톡방을 나가고 싶어도 그 방을 나갔을 때 공지 사항이나 약속 모임을 전달받지 못하거나 단톡방을 통해 유지되는 관계를 포기해야 해서 마지못해 그냥 머물거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부장:이슈에 뒤처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어느 정도의 성적 농담엔 동참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 않나.

세진:여성을 대상화하는 표현과 성적 농담, 평소에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대화에서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호:대학생들이 실생활에서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 여성들을 성적으로 품평하고 하는 일들은 여성을 그런 시각으로 바라보는 인식 자체로 문제인 것은 분명해요. 하지만 사적으로 나눈 대화가 공적으로 평가받는 게 온당한 일인가 하는 문제도 있을 것 같아요. 성적 농담의 수위란 게 허용 가능한 기준이 사람마다 다른데 신중하게 말하게 되는 계기가 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긴 하지만 개인 간 대화의 자유를 너무 위축시키는 건 아닐까요.

부장:사적인 대화라도 불법적인 요소가 있어서 누군가 그 대화를 신고했다면, 그순간 공적 영역에 들어가는 거지. 명백한 명예훼손과 모욕죄는 범죄이니.

현용:기자들 중에서도 일부가 수위가 높은 성희롱 발언을 해서 크게 논란이 됐었던 적이 있죠. 개인적으로는 크게 놀랐습니다. 몸매 품평은 물론이고 성희롱 수준의 대화였죠.

부장:이런 일은 메신저가 자리잡으면서 가끔씩 발생했는데, 그때마다 이걸 ‘정보’라고 인식하는 이들이 “기자는 이런 데서 뒤처지면 안 된다”면서 죄의식 없이 공유했지. 최근엔 이런 행동들을 자제하는 듯하지만 누군가는 여전히 그런 구시대적 발상을 갖고 있더라고.

진호:증권가 정보지 등을 전달받았을 때 ‘내가 이 단톡방에서는 누구보다 정보력이 빠르다’는 승부욕 같은 것이 생겨서 그 내용을 전파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 고민하기도 전에 일단 전달부터 하는 일도 있어 보입니다.

유민:문제가 됐던 대학생 단톡방을 보면 주변 친구들을 단순 외모 품평 수준이 아닌 성적 도구로 보고 입에 담을 수 없는 수준의 표현을 했더라고요. 그 행동이 어떻게 ‘농담’이 되는지 충격을 받았습니다. 승리도 성접대 알선이 의심되는 대화에 대해 ‘장난’이라고 했었죠. 일련의 단톡방 사건들에 대해 일부 ‘남자들이라면 하나쯤 저런 방이 있는데 재수가 없어 걸렸다’고 동정하는 시선이 있다는 것이 참 씁쓸했어요.

현용:‘누구나 하나쯤’이라는 말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모든 남자가 그렇다고 일반화하는 것 아닌가요.

세진:성폭력 관련 기사가 보도될 때마다 ‘왜 모든 남자들을 범죄자로 만드냐’는 반론이 많죠. 하지만 잘못된 성 관념에 기초한 ‘남성다움’ 문화를 무너뜨리려면 남성들이 모두 해결에 나서야지 ‘나는 아니야’라고 선을 그어 봤자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진호:‘페미니즘’이라는 것은 성별(이분법적인 성별을 넘어서)에 따른 차별을 없애고 모든 이들을 동등하게 존중하자는 것이니까 여자든 남자든 타인을 동등한 인간으로 존중하지 않는 것이 문제의 본질인 것 같습니다. 인간으로서 존중한다면 상대가 여자든 남자든 성적인 대상으로 소비하는 발언들을 하지 않을 테니까요.

유민:카톡방에서의 문제를 ‘대화’로만 본다면 성 구분이 의미 없다는 데 동의해요. 불법 영상 촬영과 유출, 공유 문제에서 그 주체가 주로 남성이었다는 점까지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성별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이자 현실이니까요. 정준영의 경우 문제 영상에 본인이 등장하는 것을 개의치 않고 직접 찍고 공유까지 했는데 평소 성에 대한 인식이 비정상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진:많은 남성들이 공유하고 있는 잘못된 성 인식이 문제인 거겠죠. ‘대부분의 남성이 불법 촬영을 하는 건 아니다. 난 억울하다’ 말해도 믿을 수 없는 게 지금 현실입니다. 그러면 ‘난 억울하다’고만 할 게 아니라 무고한 사람을 억울하게 만드는 ‘남성들의 문화’를 깨뜨려야 하죠.

진호:여자 화장실 몰카 사건 등 여성에 대한 불법 영상 사건에 대해서는 여성들이 주로 분노하는데, 이번 모텔 몰카 사건(모텔 30여곳에 몰카를 설치해 1600여명이 피해 본 사건)의 경우 남녀 모두 분노하는 반응이에요. 결국 남녀 모두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방증이겠죠.

부장:이런 사건이 벌어지면 ‘2차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하자’는 말과 함께 성범죄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거론되는데.

세진:불법 촬영 문제를 포함한 성폭력 문제를 정말 일부의 ‘악질’들이 저지르는 ‘특이한 일’로 보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학교, 가정 등에서 문화적으로 학습하게 되는 성별 권력, 성차별적인 인식(여성을 성적 대상과 도구로만 보는)에서 비롯되는 문제라서요.

유민:강력한 제도가 인식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부정청탁법) 이후 실제로 접대나 청탁이 많이 줄어든 것처럼요. 현재는 불법 촬영물이 공유되는 상황을 목격했다면 해당 대화 내용을 캡처한 후 출력해서 경찰서 사이버수사팀을 방문하거나 ‘스마트 국민제보’ 홈페이지나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제보해야 하는데요. 카카오톡 애플에 신고 버튼을 만들어 직관적인 제보를 돕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현용:성범죄에 대해서는 자정 작용을 기대해선 안 될 것 같습니다. 성폭력에 대한 문제는 문화 개선이라는 접근으로는 아무런 문제 해결이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강력한 처벌이 필요합니다. 최소한 징역형 정도의 처벌은 필요하다고 봐요. 벌금형으론 국민들의 공분을 잠재우기 어렵다고 봅니다. 최근 들어 성희롱이나 영상 유포에 대해 강력한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공익광고도 나오고 있지만, 정부가 형량 강화와 더불어 처벌이 가능한 명백한 범죄라는 점을 계속 부각시켰으면 좋겠습니다.

정리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2019-03-22 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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