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마음의 짐을 조금 덜수 있을 것 같아요”

입력 : ㅣ 수정 : 2019-08-19 10:35

폰트 확대 폰트 축소 프린트하기
박종성, 민준영 대원 17일 고향 청주서 영면. 체력난조로 먼저 하산한 박수환씨 10년간 심적고통 커. 박연수 전 직지원정대장 “두 대원 기념사업 추진”
지난 17일 오전 청주고인쇄박물관 인근 직지원정대 추모비 앞마당.

10년 전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히운출리(6441m) 북벽 등반도중 실종됐다 지난달 23일 발견된 직지원정대 소속 고(故) 민준영(당시 36세)·박종성(42세) 대원의 추모제가 끝났지만 박수환(50)씨는 발을 떼지 못했다. 눈물을 참기위해 입술을 깨물기도 했다.
지난 17일 귀향한 직지원정대 박종성, 민준영 대원의 유골함이 놓여진 추모비 앞에서 직지원정대 대원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에서 네번째가 박수환씨.
클릭하시면 원본 보기가 가능합니다.

▲ 지난 17일 귀향한 직지원정대 박종성, 민준영 대원의 유골함이 놓여진 추모비 앞에서 직지원정대 대원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에서 네번째가 박수환씨.

박씨는 한줌의 재가 돼 이날 귀향한 두 대원과 2008년 히말라야 미답봉 등반에 성공해 ‘직지봉’을 탄생시킨 산악인이다. 직지봉은 히말라야 최초로 한글이름을 가진 봉우리다.

그는 이들이 실종된 2009년 9월 히운출리 북벽 등반 도전에도 참여했다. 그러나 끝까지 동료들과 함께 하지 못했다. 4200m지점에 차려진 베이스캠프를 출발한 박씨는 등반 이틀째인 24일 오전 10시쯤 체력저하로 혼자 하산했고, 두 대원은 등반을 이어가다 25일 오후 7시쯤 베이스캠프와 교신이 끊어지며 실종됐다. 바위와 빙하로 구성된 북벽은 힘든 상대였다.

박씨는 “아침에 등반을 시작해 120m쯤 올라갔는데 컨디션이 너무 나빠 저 때문에 동료들까지 위험할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며 “제 상태를 얘기하자 두 대원이 먼저 하산하라고 해 내려왔는데” 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박씨는 현지에서 사라진 동료들을 찾기위해 몸부림쳤지만 흔적조차 찾지 못하고 철수했다. 귀국후 죄책감이 그를 괴롭혔다. 심적고통을 달래기위해 술을 자주 마셨고, 인생의 전부였던 등산도 끊었다. 박씨는 “이들이 이렇게라도 돌아와줘서 너무 고맙다”며 “10년간 저를 힘들게했던 미안함을 조금은 덜 수 있을 거 같다”고 말했다.

한 직지원정대 대원은 “수환이형이 그동안 가장 힘들어했다”며 “이제는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다시 산을 다녔으면 좋겠다”고 했다.
지난 17일 청주고인쇄박물관 인근에서 열린 박종성,민준영대원 추모식에서 지인들이 하고싶은 말을 노란리본에 적어 로프에 걸고 있다.
클릭하시면 원본 보기가 가능합니다.

▲ 지난 17일 청주고인쇄박물관 인근에서 열린 박종성,민준영대원 추모식에서 지인들이 하고싶은 말을 노란리본에 적어 로프에 걸고 있다.

10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두 대원의 유골은 가족들이 마련한 납골당으로 옮겨졌다. 박 대원은 청주시 가덕면 요셉공원묘지에, 민 대원은 청주시 남이면 가좌리 선산에서 영면에 들어갔다. 동료 산악인과 가족 등 100명은 추모제에 참석해 이들의 마지막길을 배웅했다.

시신 발견 소식을 듣고 네팔을 다녀온 박연수(55) 전 직지원정대장은 “히말라야에서 실종된 뒤 10년이 지나 발견된 것은 우리나라 산악 역사상 처음”이라며 “두 대원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많은 사람들의 간절함이 기적을 만든 것 같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어 “5년이상 빙하속에 있다가 얼음이 녹아내리면서 현지 주민에게 발견됐다”며 “대원들이 눈사태와 낙석 등 외부충격으로 추락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두 대원의 활동 등을 알릴수 이는 기록관이 있으면 좋겠다”며 “유품전시 등을 통해 직지원정대의 개척정신과 도전정신을 알리면 직지 홍보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전했다.

박 대원의 형 종훈(54)씨는 “기약도 없던 기다림의 시간이었는데 행복한 만남을 준비해준 종성이, 그리고 종성이가 가족들 품으로 돌아올수 있도록 도와준 많은 분들이 너무 고맙다”고 밝혔다.
실종되기전 박종성(왼쪽) 민준영 대원 모습
클릭하시면 원본 보기가 가능합니다.

▲ 실종되기전 박종성(왼쪽) 민준영 대원 모습

직지원정대는 1377년 청주에서 인쇄된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인 직지를 알리기 위해 2006년 30여명으로 구성됐다.

청주시는 북벽 신루트 개척에 나섰던 두 대원이 실종되자 지난해 11월 시 예산으로 청주고인쇄박물관 직지교 옆에 추모비를 세웠다.

글 사진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밴드 블로그

서울Eye - 포토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