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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시각] 초선의 꿈/이경주 정치부 차장

[데스크 시각] 초선의 꿈/이경주 정치부 차장

이경주 기자
이경주 기자
입력 2019-11-11 17:54
업데이트 2019-11-12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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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주 정치부 차장
이경주 정치부 차장
내년 총선을 앞두고 초선 의원들의 쓴소리가 터졌다. 일부는 불출마의 변을 겸해 발언했고, 일부는 의원총회에서 일갈했다. 사석에서 읊조린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정치 좀 한다는 이들의 평가는 박했다. 본업이 따로 있는 초선들이 정치적 계산으로 언론 장사를 했다거나, 정치를 겉핥기로 경험하고서 순진한 이야기를 했다는 분석이 많았다. 정치적 책임을 버리고 도망가는 격인데 ‘훈수가 웬 말이냐’거나 중진 및 특정 의원들을 공격하려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이용당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일견 맞다. 그럼에도 초선의 발언을 정치공학적으로 비틀어 보기만 하는 건 아쉽다. 국민들이 느끼는 ‘국회 무용론’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15일 국회 계단에서 먼 산을 보던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 옆에 앉았다. 불출마 선언을 한 직후였다. 그는 “정치는 상대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상대와 비슷한 걸 찾아내서 타협하는 거다. 그 주제는 민생이어야 한다”고 했다. 정치가 한국 사회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한쪽이 비토하면 아무것도 못 하는 양당제의 폐해가 답답하다고 했다. 서로 욕만 하다 끝나는 ‘두 낫싱(Do Nothing) 국회’에서 할 건 다 해봤다고 허탈한 표정으로 말했다.

같은 당 표창원 의원은 2030세대에게 사과했다. 좌우나 보수·진보와 같은 극한 갈등과 대립의 시대를 현 기성 세대에서 끝냈으면 했다. 가난한 집에서 열심히 공부한 것만으로 경찰대에 갔고 국회의원이 된 자신의 이야기도 했다. 특권층 자녀가 아니면 사회적 사다리를 오르지 못하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자신들도 사회적 차별에 아파하고 항거했던 세대인데, 모순적으로 “내 자식만은”이란 생각에 이런 세상을 만든 것 같다고 했다.

다른 초선 의원은 여야를 막론하고 상대 말을 막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로봇이나 인공지능 같은 최첨단 산업에 대응하는 법안을 만들 전문가가 없고, 세밀하게 분화된 이해관계를 조정할 능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국회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고사할지 모른다”고 했다. 앞서 불출마 선언을 했던 이상돈 바른미래당 의원은 라디오에서 각종 특권을 감안할 때 국회의원은 “마약 같다”고 표현했다. 자유한국당 조훈현 의원도 “여야 한쪽이 100% 맞는 건 없는데 당이 정하면 따라야 했다”며 정치와 안 맞는다고 했었다.

정리하면 늘 국민이 국회를 비판하던 그 지점이다. 민생에서 멀고, 정쟁에 몰두한다. 2030세대를 품지 못했고, 미래를 대비하지 못한다. 특권은 여전하다. 당이 정하면 따라야 하고 건강한 토론 문화는 요원하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각 당의 인재 영입전이 한창이다. 지금 쓴소리를 하는 초선들도 4년 전에는 영입된 인재였다. 힘차고 맑은 물이 일부 고인 물을 빼내듯 정치 개혁의 동력이었다. 정쟁에만 몰두하며 민생에서 멀어진 당시 국회의 이미지를 바꿔 줄 열쇠였다.

그러니 초선들의 목소리에 설사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 해도 그들의 ‘실패록’에는 귀를 기울일 만하다. 정치를 개혁하겠다는 풍운의 꿈을 안고 들어온 인재들이 매번 ‘환멸을 느낀다’며 떠난다면 적어도 기록으로 남길 만하다.

내년 총선으로 들어올 인재들도 역시 정치 개혁의 꿈을 꿀 것이다. 정치 9단들의 눈에는 순진하고 무모해 보일지 몰라도 이들의 꿈은 국민에게는 정치적 자산이다. 무모하게 꿈을 좇는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마지막 문장처럼 이들의 무모함으로 정치 개혁은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 가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계속 전진할 수 있을지 모른다.

kdlrudwn@seoul.co.kr
2019-11-1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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