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우의 언파만파] 국어사전 뜻풀이의 절대성

입력 : ㅣ 수정 : 2020-03-30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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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우 어문부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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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우 어문부 전문기자

국어사전은 보수적이다. 국어사전을 만드는 사람들은 저만큼 한두 걸음 뒤에 있는 듯하다. 이렇게 느껴지는 건 찾는 낱말이 보이지 않을 때다. 새로운 것일 수도, 예전부터 오가던 말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사전 편찬자들이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국어사전에 올릴 만한 낱말을 관찰하고 의미가 변해 가는 말들을 쉼 없이 기록한다.

표제어로 적절한지, 뜻풀이를 수정할지 판단은 시간을 두고 지켜보며 할 수밖에 없다. 특정한 말이 순간의 유행인지, 일시적으로 벗어난 형태인지 흐름을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어사전에 오른 말들은 벌써 시간을 보낸 것들이다. 자기 자리를 잡고 다른 말들과의 관계도 일정하게 형성한 상태다. 검증을 거친 것이라 할 수 있다. 국어사전 편찬자들은 이 말들이 좀더 가지런하게 보이도록 안내하고 관리를 한다. 낱말들에 새로운 자격을 준다.

자격을 얻은 말들은 권위를 갖는다. 국어사전에 올랐다는 게 자격의 표시가 되는데, 이 말들은 의미에 작은 변화도 주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국어사전의 독자들이 든든하게 뒤를 받쳐 준다. 그래서 한때 ‘너무’는 국어사전처럼 부정적인 상황에서만 사용해야 하는 것이었다. “너무 예뻐”라고 하면 지적을 받았다.

그런데 말은 항상 사전적으로만 쓰이지 않는다. 다른 말들과 관계를 맺고 변화를 가져온다. 그러지 않으면 어울려 쓰이기 힘들다. 의미를 더하기도 하고 덜기도 하면서 상황에 맞게 변화한다.

1938년 문세영의 ‘조선어사전’은 ‘봉지’(封紙)를 “종이로 만든 주머니”라고 풀이해 놓았다. 비닐로 만든 주머니가 없던 시절이었다. 현재의 ‘표준국어대사전’은 “종이나 비닐 따위로 물건을 넣을 수 있게 만든 주머니”라고 풀이한다. ‘지’가 ‘종이’를 뜻하는 말이었지만, ‘비닐’도 받아들인 것이다. ‘조선어사전’에서는 ‘봉투’도 “종이 주머니”다. 당시 비닐은 대상이 아니었으니 당연히 ‘봉지’처럼 ‘종이 주머니’의 하나였다. 한데 ‘표준국어대사전’도 ‘봉투’를 “종이로 만든 주머니”라고 풀이한다.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비닐 봉투’는 그릇된 표현이 된다. 그렇지만 현실은 ‘봉지’와 큰 차이를 두지 않는다. ‘표준’에는 ‘쓰레기봉투’가 표제어로 올라 있다. 쓰레기봉투는 주로 비닐로 돼 있다.

국어사전은 자격을 갖춘 말들을 모아 놓았다. 권위와 신뢰가 있다. 그렇다 보니 문구 하나에도 절대적인 한 권위를 주려는 경향이 보인다. 표현은 얼마든지 달리할 수 있다. 유연하게 접근해야 한다.

wlee@seoul.co.kr
2020-03-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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