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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 범죄를 쫓다

“좋은 글씨란 나를 드러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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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ㅣ 수정 : 2020-09-17 07:34 미술/전시 섹션 목록 확대 축소 인쇄

서예가 박원규, 개인전 ‘하하옹치언’

고교 시절 석당 현판 매료… 전각 입문
서예 90%는 공부, 수십년째 고전 섭렵

“하하 웃고 지나가는 노인의 울림처럼
중장년·청년세대 위안과 힘 주고 싶어”
서예가 박원규가 중국 소수민족 나시족의 상형문자인 동파문자체로 쓴 작품 ‘서’(書) 아래 앉았다. 동파문자체의 특징인 주황, 초록색과 먹빛이 어우러져 한 폭의 추상 회화 같은 느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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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예가 박원규가 중국 소수민족 나시족의 상형문자인 동파문자체로 쓴 작품 ‘서’(書) 아래 앉았다. 동파문자체의 특징인 주황, 초록색과 먹빛이 어우러져 한 폭의 추상 회화 같은 느낌을 전한다.

서예가 이처럼 다채롭고, 자유분방했던가. 고도의 정신 수양과 절제의 미학으로 상징되는 전통서예의 틀에 갇힌 이들에게 글씨와 그림의 영역을 아우르는 현대서예는 신선한 파격이다. 서예가 하석 박원규는 누구보다 앞서 현대서예의 지평을 넓혀온 한국 서단의 거목이다. 60여년 붓을 든 내공으로 온갖 서체를 자유자재로 풀어내며 다양한 조형미를 시도해 왔다.

그가 지난 2년간 준비한 신작 36점을 서울 종로구 혜화동 JCC아트센터 초대개인전 ‘하하옹치언’(何何翁言)에서 선보인다. 전시 제목이 재밌다. 개막 전날인 지난 15일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옛날에 누가 무슨 소리를 하든 하하 웃고 지나가는 노인을 ‘하하 존사’, ‘하하옹’이라고 했다는데 나도 이제 그럴 나이가 아닌가”라고 했다. ‘치언’은 술 취한 이의 두서 없는 말. 올해 일흔넷인 서예가는 “‘하하옹이 늘어놓는 횡설수설’ 정도가 이번 전시에 걸맞지 않나 생각했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전시 제목 ‘하하옹치언’의 한글 초성을 딴 작품 ‘ㅎㅎㅇㅊㅇ’.  JCC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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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 제목 ‘하하옹치언’의 한글 초성을 딴 작품 ‘ㅎㅎㅇㅊㅇ’.
JCC미술관 제공

‘횡설수설’은 마땅히 겸양일 뿐 작품에 담긴 메시지들은 하나같이 옹골차고, 울림이 깊다. 그는 “서예에서 운필은 10%고, 공부가 90%”라고 강조하는 학구적인 서예가다. 그에겐 다른 서예가들이 쓴 문구를 따라 쓰지 않는 원칙이 있다. 다양한 고전을 섭렵해 자기 것으로 소화한 문장들을 엮어 작품을 완성한다. 수십 년째 해온 한문과 고전 공부를 지금도 게을리하지 않는 이유다.

이번 전시에선 백세시대를 맞은 중장년 세대와 희망을 잃은 20·30대 청년세대에게 위안과 힘이 될 만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단다. 전시장 벽 하나를 차지한 길이 12m 대작 ‘산거지’(山居志)는 권력과 물욕을 좇는 속세를 벗어나 자연에서 안분지족하는 이모작 삶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한 달 전, 전시장 바닥에 종이를 펼쳐두고 붓 다섯 자루로 2시간 30분 만에 전문 385자를 완성했다. 갑골문체, 금문체, 한간체, 광개토대왕비체 등 온갖 서체를 손 가는 대로 썼다 하여 ‘하하옹수수체’로 이름 지었다.
배와 수레를 뜻하는 작품 ‘주거’(舟車)는 갑골문체와 동파문자체로 쓰고, 풍도의 시 ‘우작’을 적었다. JCC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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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와 수레를 뜻하는 작품 ‘주거’(舟車)는 갑골문체와 동파문자체로 쓰고, 풍도의 시 ‘우작’을 적었다.
JCC미술관 제공

‘주거’(舟車)는 배를 붉은색 갑골문체로, 수레를 오색 상형문자인 동파문자체로 쓰고 중국 5대10국의 재상 풍도의 시 ‘우작’을 적었다. ‘배와 수레 어디서든 나루에 안 닿을까’라는 시구처럼 당장은 앞날이 불투명해 보이는 청년세대도 결국은 밝은 빛으로 나아갈 것이란 따뜻한 위로다.

항상 “나만이 할 수 있는 작품인가”를 되뇐다는 그는 “좋은 글씨란 예쁜 글씨가 아니라 나를 드러내는 글씨”라고 했다. 독창적인 글씨는 치열한 자기 수련에서 나온다. 전시장 한쪽에 놓인 글씨 연습 수첩들이 대가의 노력을 짐작하게 한다.

전북 김제가 고향인 그는 고교 때 이종사촌 형님 집에 걸린 석당 고석봉 선생의 ‘인지위덕’(忍之爲德) 현판에 매료돼 전각에 발을 들였다. 대학은 법학과로 진학했으나 적성에 맞지 않아 2학년 때부터 한문과 글씨를 본격적으로 배우러 다녔다. 강암 송성용, 독옹 이대목(대만), 긍둔 송창, 월당 홍진표가 그의 스승들이다. 대중들에겐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춘향뎐’, ‘취화선’, ‘천년학’의 제자(題字)로 친숙하다. 전시는 12월 20일까지.

글 사진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2020-09-17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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