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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광장] 원칙과 신뢰의 정치 허무는 경선 연기론/오일만 논설위원

[서울광장] 원칙과 신뢰의 정치 허무는 경선 연기론/오일만 논설위원

오일만 기자
오일만 기자
입력 2021-06-22 20:18
업데이트 2021-06-23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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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만 논설위원
오일만 논설위원
대선 경선 연기론을 둘러싸고 여당 내부가 시끄럽다. 이낙연 전 대표와 정세균 전 국무총리, 이광재·김두관 의원, 최문순 강원도지사 등 이른바 ‘친문(친문재인)’계가 경선 연기를 요구하고,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중심으로 박용진 의원 등이 원칙론으로 맞서는 형국이다. 민주당 당헌은 ‘대통령선거일 전 180일까지’ 대선 후보를 선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상당한 사유’가 있을 경우 ‘당무위원회 의결을 통해 바꿀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후보자 간의 다툼과 당내 갈등을 봉쇄하기 위해 이해찬 대표 시절 만든 당헌이다.

경선 연기론자들은 ‘상당한 사유’로 코로나19와 흥행을 이유로 든다. 코로나19 집단면역 형성이 예상되는 시점으로 경선을 미뤄 국민적 관심을 높이면서 11월 초로 예정된 국민의힘 후보 선출과 시기를 맞출 필요가 있다는 논리다. 반면 이 지사는 경선 연기를 ‘가짜 약 팔이’에 빗대며 발끈했다. 원칙과 어긋나고 민심과 동떨어진 소모적 논쟁을 그만두지 않으면 대선 승리를 위태롭게 만든다는 주장도 펴고 있다.

22일 소집된 민주당 의원총회에선 예상대로 이런 찬반 양론이 팽팽했다. 정당의 최종 목적인 집권 여부가 걸린 사안이라 어려운 정치적 선택임은 틀림없다. 복잡하고 판단이 어려울수록 본질을 꿰뚫는 혜안이 필요하다. 바로 정치의 근본인 원칙과 신뢰의 문제가 판단의 잣대가 돼야 한다는 점이다.

정치의 본질은 흥행이 아니다. 대선 승리를 위해 치열한 수싸움도 필요하지만, 정작 중요한 정치의 핵심을 놓치면 안 된다. 시대정신이 분출하는 정치 현장에서 흥행은 저절로 따라오는 부수적 효과에 불과하다. 흥행을 연기 사유로 말하는 당내 경선 연기론자들의 논리는 본질보다 정치공학적 접근법에 가깝다. 2019년 자유한국당(국민의힘의 전신)은 총선을 앞두고 흥행을 위해 조직위원장 선발을 공개 오디션으로 진행했지만 참담한 실패로 끝난 사례도 있다. 15개 지역구에서의 공개 오디션은 유튜브와 당 홈페이지·페이스북을 통해 생중계됐지만 실시간 시청자는 1000명 안팎에 불과했다. 당시 제1야당은 대선 참패 후 석고대죄를 요구하는 민심과는 반대로 기득권 싸움에 골몰했다. 민심과 당심 모두 공개 오디션을 외면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고 1년 후 실시된 총선의 참패도 예견된 수순이었다.

대다수 국민 역시 경선 연기를 둘러싼 민주당의 갈등을 당내 ‘밥그릇 싸움’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당내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이 지사를 꺾기 위한 친문과 비(非)이재명 진영 간의 연합전선이자 지지율 만회를 위한 ‘시간 벌기용’이란 의구심이 많다.

정치의 본질은 원칙과 신뢰다. 불리한 상황에서도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원칙을 지키는 것이 바로 정치의 요체다. 가장 역동적인 선거로 기록된 2002년 대선이 그랬다. 지역주의와 권위주의의 높은 벽을 허물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바보 노무현’에게 열렬한 지지자들의 호응이 있었다. 목전의 이익을 버리고 시대정신을 구현하려는 노무현의 정치에 박수를 보낸 것이다.

코로나19가 창궐하는 와중에서 ‘이준석 돌풍’을 몰고 온 최근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를 보자. 면대면 상황에서 경선을 치러야 흥행이 된다는 연기론자들의 논리가 무색하다. 국민적 관심을 모은 이유는 시대적 요구인 정치 혁신을 갈망하는 당원과 지지자들의 눈높이가 맞아떨어진 덕분이다. 변화와 혁신의 국민적 요구가 ‘0선의 30대 정치인’을 제1야당의 당대표로 끌어올렸다. 흥행은 정치의 원칙을 지키면 자연스레 따라오는 부수 효과라는 것을 입증한 사례다.

정당의 당헌은 당원과의 약속이지만,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공당이 정치의 기본인 원칙을 정치적 유불리를 이유로 자꾸 뒤엎는다면 결국 자멸의 길로 빠지기 마련이다. 당 개혁 혁신안으로 2015년 제정한 더불어민주당 당헌 제96조 2항을 보자. ‘자당 소속 단체장의 중대한 잘못으로 발생한 재보궐선거에는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국민과의 약속을 파기했다가 4·7 재보궐선거에서 역대 최대의 참패를 당했다. 국민을 위한다는 이유로 국민을 우롱한 대표적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국민의 신뢰가 떠난 자리에서 흥행을 찾는 것은 전형적인 소탐대실의 정치다. 어려울수록 원칙을 지켜야 한다. 정략적 이익을 위해 늘 그럴듯한 변명을 대의로 포장하지만 국민은 단박에 알아챈다. 국민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 버리는’ 장식용 당헌을 가진 정당과 그런 정당의 대선 후보를 더이상 신뢰하지 않는다.

oilman@seoul.co.kr
2021-06-23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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