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서울광장] 대선 전리품, 공공기관 감사/전경하 논설위원

[서울광장] 대선 전리품, 공공기관 감사/전경하 논설위원

전경하 기자
전경하 기자
입력 2021-09-23 20:32
업데이트 2021-09-24 03:05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전경하 논설위원
전경하 논설위원
공공기관에 전문성이 부족한 ‘낙하산’ 감사들이 임명돼 논란은 있지만 법적으로는 전보다 완벽하다. 지난해 3월 개정돼 올 1월부터 시행된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 제30조는 공공기관 감사 자격 요건을 공인회계사나 변호사 등으로 경력 3년 이상이거나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또는 상장사나 연구기관 등에서 3년 이상 감사 관련 근무를 한 경우 등으로 신설했다. 법률 개정에 맞춰 지난해 11월 시행령도 고쳤는데 전문성 요건에 ‘비영리단체(시민단체)나 정당에서 1년 이상 감사·예산·회계 등을 담당하고, 5년 이상 공공기관 업무 관련 분야에 근무’하는 조항이 신설됐다. 시민단체나 정당 출신이 감사로 갈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법을 바꾸기 전에도 낙하산 임명에는 거리낌이 없었다.

지난해 1월 참여정부 때 청와대 민정비서관이었던 남영주 전 국민고충위(현 권익위) 상임위원이 가스공사 감사가 됐다. 직원들의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부동산 투기로 해체 주장까지 나온 한국토지주택공사(LH) 감사는 2018년 3월부터 올 3월까지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대선 캠프 미디어특보였던 허정도 전 노무현재단 경남 상임대표였다. 부동산 투기 의혹이 불거진 뒤인 지난 4월에야 염호열 전 감사원 고위감사 공무원이 감사가 됐다. 지난해 11월에는 최영호 전 광주 남구청장이 한전 감사, 지난달에는 청와대 총무인사팀장 출신 천경득 전 청와대 행정관이 금융결제원 감사가 됐다.

낙하산으로 기관장보다 감사가 선호되는 이유는 감사의 특성에 있다. 공공기관의 감사는 기관장 다음인 2인자로 연봉이 책정되고 차량, 비서 등 각종 혜택이 주어진다. 반면 기관을 대표해 외부에 나설 일이 드물고 업무 특성상 내부 상황을 대부분 일이 터진 다음에 접하니 업무 강도는 기관장보다 훨씬 낮다. 낯선 조직이라 조직과 업무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조직의 개선을 이끌어 내기가 쉽지 않다. 개선할 의지마저 없으면 감사는 이른바 꽃보직이 된다.

때론 감사가 갈등 요인이 되기도 한다. 공운법에 따라 기관장은 주무 부처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거나 주무 부처 장관이 임명한다. 감사는 기획재정부 장관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거나 기재부 장관이 임명한다. 기관장과 감사를 앉힌 세력이 각각 다르니 임명 세력의 권력 관계에 따라 가끔 알력도 발생한다. 기관장이 감사보다는 업무 관련성이 강한 분야 출신인데 기관장으로서는 속 터질 일이다.

공공기관이라도 상장사면 그나마 낫다. 상장사는 감사위원회가 어떤 안건에 대해 언제 열렸고, 누가 어떤 의견을 밝혔는지 공시한다. 사업보고서 이사회 목록에서 해당 연도 회의 결과를 쉽게 볼 수 있다. 상장사가 아닌 공공기관은 일 년에 몇 번 감사위원회를 열어 몇 개 안건을 통과시켰는지만 공시한다. 회의록 문건을 하나씩 확인해야 하는데 안건 내용이나 누가 어떤 의견을 밝혔는지 공개되지 않는다. 감사위원회가 후행적 성격이고, 공시나 보고서는 시간이 더 지나 공개되는데 해당 내용을 담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생각 자체를 안 해 봤을 거다.

행정규칙 ‘공기업·준정부기관 감사 기준’ 제7조는 감사의 업무자세에 대해 ‘기관 운영 감시자로서의 임무를 인식하고 기관의 주인인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는 높은 도덕성을 바탕으로 공정하고 성실하게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공공기관 주인이 국민이라는데 임원 임명 과정을 보면 주인은 정권이다. 임명되는 사람들 또한 공공기관 주인이 국민이라고 생각할까.

외환위기 전 공공기관 감사는 그 조직에서 승진하거나 주무 부처 출신이 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업무 연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후 사외이사, 감사 등 이사회가 의무화됐지만, 이사회는 경영진을 견제하기보다는 거수기가 됐다. 이사회가 권력기관과의 관계를 생각해 퇴직 관료들 임금을 챙겨 주는 도구로 쓰이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은 집권세력의 논공행상 자리가 됐다. 임명 과정을 보면 누구나 자유롭게 쓸 수 있어 남용으로 쉽게 고갈되는 ‘공유지의 비극’이 떠오른다.

공공기관 감사 제도를 바꿔라. 기관장을 견제하는 2인자라는 우리 사회에서 맞지 않는 명분과 지위가 아니라 기관장을 도와 방만 경영을 줄이는 자리로 만들자. 경영평가, 국정감사 등 기관장을 견제하는 수단은 다양하다. 감사에게 합당한 지위를 주고 이에 맞춰 혜택을 주는 것이 방만 경영을 줄이는 길이다. 그러면 집권세력의 논공행상 자리는 줄어들 것이다. 대선 후보들이 약속해야 할 일이다.
전경하 논설위원 lark3@seoul.co.kr
2021-09-24 31면

많이 본 뉴스

의료공백 해법, 지금 선택은?
심각한 의료공백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의대 증원을 강행하는 정부와 정책 백지화를 요구하는 의료계가 ‘강대강’으로 맞서고 있습니다. 현 시점에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사회적 협의체를 만들어 대화를 시작한다
의대 정원 증원을 유예하고 대화한다
정부가 전공의 처벌 절차부터 중단한다
의료계가 사직을 유예하고 대화에 나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