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형 시인
1917년 함경남도 함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도쿄 일본대학 예술부 창작과에서 2년간 수학한 후 1947년 ‘민주조선’지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고인은 1938년 지인을 통해 몽양 여운형(1886∼1947) 선생의 존재를 알게 된 후 서울 계동 자택을 수시로 찾아가 가르침을 받았다. 해방 후에는 동신일보와 중외신보, 민주조선 등에서 기자 생활을 하며 김구, 이승만 등 임시정부 요인들과 임화, 안회남 등 월북 문인들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그는 정신적 스승으로 모셨던 몽양이 서거한 후 작품 활동을 중단하고 칩거했다가 33년 만인 1980년 다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재야 민주화 통일운동에 참여하면서 분단과 통일 문제를 다룬 시를 꾸준히 발표했다. 1989년에는 시집 ‘지리산’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방현주(89)씨와 한양대 화학과 교수인 아들 휘건(52)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14일 오전, 장지는 경기 파주 동화경모공원이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2013-06-13 2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