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G20 정상회의 2010] ‘美·濠 지지 + TF팀 특파 설득전’ 주효

[서울 G20 정상회의 2010] ‘美·濠 지지 + TF팀 특파 설득전’ 주효

입력 2010-07-15 00:00
수정 2010-07-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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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하기까지 준비과정

G20 정상회의를 한국이 유치한 것은 한 편의 드라마였다.

한국 유치가 최종 확정되기까지 이명박 대통령과 우리 정부의 치열한 막후 작전이 있었다. 유치 과정에서 미국·영국·일본 등 각국의 국내 정치상황도 작용했으며, 이로 인해 각국의 이해관계가 서로 얽히면서 막판까지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됐다. 이 대통령은 유치 직후 “총성 없는 전쟁터에 갔다 온 기분”이라고 소회를 밝힌 바 있다.

국제 외교무대에서 몇몇 주요국가들이 경쟁을 벌였고, 한국 개최에 대한 이들 국가의 견제도 심했다. 새로운 ‘글로벌 거버넌스’로 자리잡은 G20 회의를 주재한다는 것 자체가 국력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실제 제1차 미국 워싱턴 회의(2008년 11월) 이후 일본과 호주가 차기 회의 개최를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2차 회의는 영국 런던(2009년 4월)에서, 3차 회의는 미국 피츠버그에서 각각 열렸다. 4차 회의는 캐나다에서 개최됐다. 우리나라는 일본의 개최 의사에 지지를 표시했다가 일본의 개최가 좌절된 뒤 자연스레 일본의 지지를 받을 수 있게 됐다.

미국과 호주의 도움도 컸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2차 런던회의에서 한국이 내년에 G20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것이 좋겠다는 비공식 입장을 표명, 사실상 지지 의사를 나타냈다. 이것이 결정적인 도움이 됐다. 호주는 그동안의 두 차례 회의에서 내년에는 한국에서 개최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적극 개진하며 다른 국가들을 설득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이 G20 의장단의 일원으로서 그동안 의제 선정과 정상선언문(코뮈니케) 작성 과정에 주도적인 리더십을 발휘한 것도 한국 유치에 밑바탕이 됐다.

이 대통령은 특히 1차 회의부터 보호무역주의 반대 및 현 수준 동결(스탠드 스틸)을 제안해 회의 성명에 반영시켰다. 지금까지 진행된 G20 정상회의에서 합의된 내용 중 가장 큰 업적 가운데 하나가 스탠드 스틸이라는 게 정부 측의 설명이다.

이처럼 한국 유치 가능성이 높아지자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11월 워싱턴 1차 회의에서 귀국하자마자 G20 관련 태스크포스 구성을 지시했다. 사공일 당시 대통령 경제특보에게 G20정상회의 기획조정위원장을 맡겨 이 문제를 전담시키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한국 개최를 설득하라는 특명도 내렸다. 사공일 위원장은 미국을 비롯해 영국·프랑스·독일·중국·일본 등 주요 G20 회원국을 직접 방문해 한국 개최에 대한 협조를 구하며 분위기를 무르익게 주도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2010-07-15 3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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