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장태완 “전두환 등에 대세 기울었을때…”

故 장태완 “전두환 등에 대세 기울었을때…”

입력 2010-07-27 00:00
수정 2010-07-27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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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일 숙환으로 별세한 고(故) 장태완 전 국회의원은 1979년 12.12 사태 당시 수도경비사령관으로서 신군부에 맞서 반기를 든 꼿꼿한 군인이었다.

 1950년 육군종합학교를 졸업한 뒤 5군단 작전참모로 월남전에 참전했고,1971년 장군으로 승진한 뒤 수경사 참모장,사단장,육군본부 교육참모 차장 등을 거쳐 1979년 11월 수경사령관으로 취임했다.

 하지만 불과 1개월 뒤 신군부에 의해 12.12 사태가 터졌고,장 전 의원은 이를 ‘반란’으로 규정,진압에 나섰다.

 장 전 의원은 훗날 신군부에 맞섰던 당시 상황에 대해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비롯한 하나회원들이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납치했을 때 이미 대세가 기울었다”며 “그러나 진압 책임을 맡은 내가 백기를 들 수는 없었고,죽기로 결심하니까 마음이 편안해지더라”고 회고했다.

 결국 신군부 진압에 실패한 장 전 의원은 보안사령부에 체포돼 서빙고분실에서 두 달간의 조사를 받고 풀려났으나,가택연금 및 강제예편을 당해야 했다.

 12.12 사태의 충격에서 헤어나기도 전에 장 전 의원은 부친과 서울대 재학 중인 외동아들을 잃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와신상담한 장 전 의원은 1993년 당시 민주당 ‘12.12쿠데타 진상조사위’를 통해 공개증언에 나서며 ‘진실 알리기’에 매진했다.

 군의 정통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12.12 사태에 대한 역사적 판단 이전에 사법적 처리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신념에 따른 것이었다.

 12.12 사태가 역사적으로 재조명되자 장 전 의원은 ‘군인의 표상’으로 추앙됐으며,정치드라마 ‘제4공화국’ 등에서 12.12 사태 당시 목숨을 던져 쿠데타를 진압하는 모습이 소개되면서 인기를 얻기도 했다.

 이후 장 전 의원은 1994년 자유경선으로 당선된 첫 재향군인회장이 됐으며,6년간 재향군인회를 이끌다 2000년 3월 민주당에 입당,16대 총선을 통해 국회의원 배지를 거머쥐었다.

 전국구 국회의원이었던 장 전 의원은 민주당 최고위원으로 지명돼 활약했고,2002년에는 노무현 대통령후보 보훈특보를 지내기도 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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